친구에게

안녕!

뒤늦게 네가 공부한다고 학교에 등록하고 이제 조금 있으면 학기가 시작되겠구나. 날짜가 다가오니 조금은 찹찹한 마음도 생기리라 믿어.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려면 그것에 대한 기대에 앞서 걱정과 함께 어쩌면 두려움도 있지 않을까 해. 그러나 학점을 받고 이수를 해서 그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너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의 친구로서 네가 자랑스러워. 큰 결심으로 시작한 만큼 학교생활을 즐긴다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즐기는 공부라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제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새로운 만남들도 형성되겠지. 학생이든, 가르치는 교수님이든, 공부와 연결된 또 다른 만남이든 너를 중심으로 점점 넓은 관계망이 형성될 거야. 그 가운데서 지금까지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성실한 모습, 진실된 모습으로 너다움을 유지해 나간다면 분명 네가 원하는 보다 나은 존재로 우뚝 서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또 무슨 사정이 있어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해도 거기에도 네가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학점을 다 이수하고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 너의 목표가 아니었지 않니? 그러니 그 어떤 것에서도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작하는 그 순수한 마음처럼 하루하루 성실함으로 열려진 문으로 묵묵히 걸어가길 바래.

 

우리가 마주앉아 커피잔 앞에 놓고 주고받은 대화들 속에서 우리는 마냥 행복했지. 우리의 내면을 살찌우게 했고 풍성하고 넉넉함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조금은 더 깊게 알게 되었던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책가방을 챙겨 메고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가는 그 즐거움은 학생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해. 그러한 시간들이 더욱 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아침시간의 기차 안에는 활기가 넘쳐나더구나. 깔끔하게 차려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들, 케주얼한 차림으로 가방을 둘러맨 풋풋한 학생들, 그 속에 한 사람이라니…. 60대에 시작하는 공부, 너의 모습을 그려본다.

 

지난날 내가 공부할 때가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을 즐기려 했었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세월이 지나 오늘 내가 날마다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완전히 그분의 손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어.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해. 기차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는 길목의 맥도날드에 들러 커피 한잔을 사서 들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그 시절, 깨끗한 화이트 보드와 잘 정돈된 책상과 의자들, 내가 항상 앉았던 왼쪽 셋째 줄, 그곳에서 비로서 삶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던 것 같아. 물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나의 삶 전체의 커다란 곡선에서 또 다른 점 하나로 연결이 되는 시간표였을 테지만 말이야. 그러나 내가 그 시간에 의미를 두는 것은 바로 과거의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즐겁게 지냈다는 것이야.

 

각 과목마다 다른 교수님들의 강의는 나에게 있어 모두가 새롭게 흥분하기에 충분했어. 학부나 대학원 공부가 그렇듯이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쓸 때마다 거기에는 비판적인 견해가 들어가야 하는데 모두가 이해되고 은혜이니 이것이 문제이기도 했지만 말이야. 더러는 어떤 학자가 주장하는 것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를 알 것 같아서 그 학자의 대변자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학점과 상관없이 나를 위한 나만의 공부가 된 셈이라고 할까? 도서관 어느 구석자리 책들에 둘러 쌓여있는 보잘 것 없는 작은 나,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충만한 만족감이 그 책들만큼이나 나를 감싸 안았던 느낌은 부족한 나의 어휘능력으로 표현할 수가 없어.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는 그림 하나가 있어. 그것은 사람의 두뇌가 그려진 그림 안에 알아볼 수 없는 수많은 글들이 체워져 있고 큰 손이 그 두뇌를 받치고 있는 것이었어. 도서관 코너자리, 그곳 벽에 걸려있는 그 그림은 늘 나를 겸손한 자리로 데려다 주었지. 많이 배우고 그 배운 것으로 인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 해도 결국 그것은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또 아무리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 해도 그 큰 손에 달려 있다고 나에게 알려 주는 메시지였어.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 지나가는 순간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곡선을 만들어 이제 내리막길에 놓여있는 우리네 시간표, 그래도 지금이 행복한 삶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 이제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고, 더 사랑할 수 있으며 건강한 사고로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여유로움을 삶 속에서 배워온 너와 나, 기쁨이 동반된 자유로움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 얼마나 평온한지 그저 감사할 뿐이지.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이렇게 자유로운 것을 말이야.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그 어떤 것!  꿈이라고 할까? 소망이라 할까? 깊은 샘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이 넘쳐 흘러 잔잔하게 너와 나를 덮었던 어느 아름다운 날 오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나누었던 이야기들 기억나니? 너와 나를 넘어 가족, 친구,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곳에 흘러가기를 바래 보자꾸나. 그러나, 잔잔하게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흐르도록 성숙한 이성으로 덮어 두자꾸나. 때로는 그래야 한다는 지혜도 알았으니까 말이다. 너와 내가 꿈꾸는 것, 그런 날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아니 올지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너와 나의 저물어가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석양이 펼쳐지고 있다는 거야. 이 순간을 소중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누리며 살아보자.  화이팅!

 

친구 클라라가

 

 

글 / 클라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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