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고독 그 한의 허무함

삶은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버스정류장이다. 만남은 즐거움과 기쁨이 되기도 하고, 이별은 애달프고 눈물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만남도 이별도 시공간을 지나면 모두 지워진다.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을 흐르는 강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어차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만남과 이별은 의식에도 무의식에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라는 짙은 타투로 남아있다.

그는 여든 세 살이다. 그가 응급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져 혼미한 의식상태에서 어렴풋이 깨어나면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내 아내 김경자가 보고 싶다.”

그가 일곱 살 때 아버지는 세상을 등졌다. 어머니의 삶은 외로운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깊은 한숨과 고난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네 형제 중 둘째다. 어머니가 유기그릇 팔겠다고 집을 비우면 두 동생을 양쪽에 눕히고 엄니를 찾으며 칭얼대는 막냇동생을 품어 안고 달래며 재웠다.

그가 열다섯 살 즈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장남 형은 한입이라도 덜겠다며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두 동생을 데리고 신문배달을 했다. 추운 겨울이면 새벽에 일어나 신문보급소까지 40여분을 걸어가면서 잠 깨지 못하는 막냇동생을 업고 걸었다. 막냇동생 발이 시릴까 봐 두발을 자신의 교복바지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셋째 동생은 막냇동생의 신발을 들고 따랐다.

그는 두 동생이 성인이 될 때까지도 업고 있었다. 장남 형은 어머니와 동생들 곁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갔다. 어머니와 두 동생은 언제나 그의 세상 속에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운명처럼 자신의 세상에 품어 안고 있었다. 그는 힘겹고 외로운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성악을 전공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아내는 성정이 따스했다. 아내는 검소하고 진솔했다. 그는 아내의 검소함과 순수함을 사랑했고 아내는 그의 겸손하고 따뜻한 인품과 성실함을 존경했다.

그는 그를 옥죄는 가난을 뿌리치기 위해 검소하고 절약하며 살아갔다. 휴지 한 장도 아꼈다. 물려받은 것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허영 허식에 눈감고 아끼고 모으고 절제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믿었다.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외면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줄 몰랐다. 아내는 그의 절약에 손잡으면서 사랑으로 살아갔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갔다.

그가 예순 다섯이었다. 아내는 예순 둘이었다. 아내는 암과의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3녀 1남을 남겨두고 멈칫멈칫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과 작별한 후 간직하고 있던 목걸이나 팔찌나 반지는 모두 모조품 이었음을 알았다. 아내 살아생전 고운 옷 한 벌 제대로 사준 적이 없다.

아내가 그에게 남겨둔 마지막 선물은 장롱 서랍 깊은 곳에 넣어 둔 내의 몇 벌 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는 그 내의를 입지 못하고 보기만 했다. 그는 가진 것들 아무것도 아내에게 나눠 주지 못했다. 가슴으로 소리 없이 울었다.

아내가 떠난 세상은 사방이 적막이었다. 자식들 모두 출가시켜 모아둔 돈 나눠주고 홀로 남았다. 동트는 새벽이면 홀로 집 주위 개천을 걸으며 허전함을 달랬다. 혼자 앉아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TV를 켠다. 온갖 소리 소리들. 듣는 듯 안 듣는 듯 우두커니 앉아있다. 아내가 곁에 앉아있는 것 같다.

시장에 들러 마른 멸치와 파랗고 매콤한 고추를 산다. 프라이팬에 멸치와 고추를 쏟아 붓고 뒤적이며 볶는다. 며칠은 반찬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음 번엔 먹고 싶은 생명태지리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시장 길목 어귀에 서있는 것 같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질 않는다. 첫 아이를 얻고 서로 쳐다보며 울음이 웃음이 번지던 날이. 선풍기 한대 사 들고 와 돌리면서 즐거워하던 그 무더운 여름날이. 새 집을 지어 아내 손잡고 이 방 저 방 둘러보며 웃음을 나누던 일들이. 한겨울을 나기 위해 지하실에 연탄을 동산처럼 쌓아놓고 나란히 서서 바라보면서 흐뭇해 하던 희끗희끗 눈발 날리던 그 겨울날이.

올 겨울은 걱정 없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쌓아둔 연탄을 셌다. 그런데 아내에게 건네준 연탄 값보다 연탄이 조금 부족하다. 다시 세어본다. 모자란다. 아내에게 어찌된 거냐고 물었다. 아내는 모자란 것이 맞는다고 했다. 덜 주문한 연탄 값으로 평소 사고 싶은 것, 조그마한 것, 하나 샀다며 미안해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한푼 한 푼 아끼고 모아 선 계약금 넣어둔 주택부금으로 60여평의 아방궁 같은 아파트가 당첨되자 축하한다고 웃음으로 울음으로 서로를 보듬었던 날이. 하늘 닿을 듯 높이 솟은 아파트를 보면서 뭔가 조금 이룬 것 같아 자랑스레 아내의 웃음짓는 얼굴을 바라보던 날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인다. 아내의 빙그레 웃는 갸름한 얼굴이 보인다. 나이 들어가는 자식들과 손주들 등뒤에 있다. 방안에도 부엌에도 있다. 창 너머에도 산에도 바다에도 하늘에도 있다.

아내를 보내고 긴긴 세월을 허전하고 아프고 쓸쓸한 골목길을 헤맨다. 어느 하루도 아내 김경자가 잊혀지는 날이 없다. 앉아있을 때도, 서있을 때도, 걸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꿈속에서도. 못다해준 것들이 갈고리 되어 가슴속을 헤집는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그대는 아는가. 처절한 고독과 피울음 묻어버린 그 한의 허무함을.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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