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대한민국에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작가 한강이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 123년만의 쾌거다. 한강 작가는 매우 놀랍고 영광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경사다. 싸움질만 하는 국회에서도 여야 함께 박수를 치면서 언쟁을 중단했다. 같은 국문학도로서 괜히 내가 으쓱해진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발표했다.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다.”
한강의 대표작품 중 하나가 ‘채식주의자’다. 나는 다행스럽게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소년이 온다’ ‘흰’ 등 한강의 작품을 벌써 오래 전에 읽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곧 읽어볼 생각이다.
나는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폭력의 혼란을 느꼈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살육과 폭력성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라며 이에 대항에 차라리 나무가 되기를 택한다.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사람들은 뺨을 후려치며 폭력을 꺼내 든다.
작가는 “이 소설은 통념에서 벗어난 인간이 겪게 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적나라하게 펼쳐놓았다. 이해 받지 못하고 연민의 대상으로 남는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 독자 자신이 진실을 움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는 인간의 폭력성을 증오했다. 주검이 즐비하게 늘어진 광장을 헤매며 총성과 함성을 들으면서 울음 울고 분노했다.
‘흰’을 읽을 때는 죽음이 떠올랐다. 흰 배내옷, 흰 젖, 흰 안개, 흰 파도, 흰 수의, 흰 재 같은 흰색에서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실체 같은 것들이 나의 의식을 헤집고 다녔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책을 읽지 않는다. 매스미디어의 변화는 책을 밀어냈다. 10여년 전엔 신간서적이 나왔을 때 100만부가 팔리면 대박이라고 했다. 지금은 10만부만 팔려도 대박이라고 한단다.
관심 있는 책이 나와도 굳이 사서 읽지 않는다. 인터넷에 책의 줄거리가 소개되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대충 줄거리만 읽고 그 책의 전부를 읽은 척하면서 설익은 ‘썰’을 풀어놓는다. 깊이도, 울림도, 맛도 없는 떫은 감 같은 단편적인 사고가 절대적이 되고 지극히 편협된 사고가 보편적인 것처럼 위장된다.
부끄럽지만 나도 얼마 전부터 책을 손에서 놓았다. 나 역시 인터넷을 뒤적여 줄거리를 읽는다. 읽으면서는 뭔가 답답하고 검은 구름 낀 하늘아래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서사마저 묶여버리는 감정이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고국의 형님이나 조카에게 부탁해서 책을 받곤 했다. 그런데 책을 사고 보내주는 수고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형님이나 조카는 무슨 책이든 읽고 싶으면 알려달라고 하지만 자꾸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다.
매스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조급증과 획일적인 사고를 조장한다. 충동적이며 극과 극의 대립을 부추긴다. 식자들은 문화의 다양성 정보의 광역화를 주장한다.
물론 전달자의 수준과 이념의 편협성을 떠나서 나름의 정당성 신속성은 긍정적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 덧붙여 이념적이 아닌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는 삶의 즐거움도 선사해준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매스미디어는 사람들의 사고를 즉흥적이고, 감각적이며, 단순하게 변화시키는 인스턴트식품 같은 부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는 거다.
출판문화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작가들의 철학, 의식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거다. 어쩌면 글 쓰는 사람들은 노점상이 되어 자신이 쓴 책을 좌판에 벌려놓고 양갱이 팔 듯 책 사달라고 호객행위를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 뇌의 핵심 부위는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우리의 사고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문제해결 계획수립 의사결정과정에 관여한다. 전두엽은 감정과 인식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무기력, 집중력 저하, 기억력 저하, 판단력 저하를 동반한다.
그런데 전두엽 손상을 막고 활성화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한 생각의 정리와 표현하는 연습이라고 한다. 이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책을 읽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다. 자기만의 세계를 펼치고 그 속에서 삶 죽음 진실 정의 용기 포용 사랑을 배우고 인생의 불연속성을 익히는 거다.
산다는 건 인간관계다. 어떤 관계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며 배제다. 어떤 관계는 호혜적이며 존중이며 포용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는 굳이 논할 필요는 없을 거다. 인간관계를 바르게 배우고 숙지하는 곳이 책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자 출판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역사 진실 정의를 왜곡하며 시기, 질투에 젖은 구역질 나는 극우 유튜버 해충들은 배앓이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강의 책을 사려고 책방 앞에 줄을 서있다는 거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화점이 돼 잠자는 책방이 깨어나기를 기대한다. 삶을 풀어줄 길은 책 속에 있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