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빌리는 날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음이 흐뭇하고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다 읽었다는 뿌듯함은 언제나 신선해서 좋다. 나는 책을 통해 새로운 이치를 깨닫고 앎을 더해가는 기쁨과 함께 나이 들수록 더욱 진실해지고, 온화해지고, 겸손해지고, 인정이 깊어져야 한다는 사람됨을 배우기도 한다.

때로는 대강 아는 천박한 지식을 매미나 개구리가 천방지축 요란스럽게 울어대듯 시끄럽고 폭넓은 양, 박식한양 설쳐대지는 않는지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쓸모 없는 티끌 같은 상식을 대단한 지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껍죽대지는 않는지 뒤돌아보기도 한다.

책은 이처럼 나에게 정신적인 가르침과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가 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책은 잘 골라 읽어야 한다.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닌 것이다. 제가 잘난 줄 알고 제멋에 겨워 억지논리로 흥얼흥얼 써놓은 글을 읽는 것은 아무것도 느낄 것이 없는 속물들과 시시덕거리며 헛된 시간을 보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글은 사람을 더 크고 더 넓게 발전시키고, 침잠하는 바다처럼 깊게 변화시키고, 큰 바위 얼굴처럼 성숙하게 만든다.

나는 보석처럼 품고 있던 3백여 권의 책들을 교민을 위한 도서관을 만든다는 속임수에 속아 어떤 개인에게 넘겨주고 난 뒤부터 현지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본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거나 좋은 글이라고 평판이 난 책은 고국의 형님에게 부탁해 구해 읽지만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교민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해서 내가 책을 기부했던 곳에 책을 빌릴 수 있는지 연락을 했더니 책을 빌려보려면 일정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책을 빌려보는데 돈을 내야 한다는 것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분노가 치밀어 발길을 끊었다.

어찌됐든 책을 빌리려 오클랜드 전역을 뒤지고 다녀야 할 모양이다. 나이 들어 할 일이 책 읽고, 성숙해지도록 애쓰는 일 외에 뭐가 더 있겠는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서관이 몇 곳 있는데 한국 서적은 도서관 한쪽 귀퉁이에 진열돼 있다. 서가의 크기로 가늠해보건대 기껏해야 3, 4백여 권의 서적이 진열돼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면서 품고 있던 책을 이곳에 기증하지 못한 것을 못내 후회한다. 진열돼있는 서적도 볼만한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그나마 수시로 빌려다 보니 읽을만한 책 고르기도 쉽지 않다.

이번에는 바닷가 쪽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봤다. 그곳도 약속이나 한 듯이 도서관 한 귀퉁이에 한국 서적이 초라하게 진열돼 있다. 이제부터라도 읽고 난 책은 이곳에 기부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책장에 남아있던 십여 권의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곳 역시 여러 차례 드나들다 보니 읽을만한 책 고르기가 힘들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라고 설파했던 법정스님은 나이 듦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이 생활의 도구인 물건에 얽매이거나 욕심을 부린다면 그의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위인들은 나이 먹었다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부정부패에 무감각하고, 가당찮은 욕심 많고, 같잖게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착각하고, 나설 곳 안 나설 곳 구분하지 못하고, 손익에 영악하다.

돈 좀 있고 힘 좀 있다는 인간들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진다. 성숙하지 못해서다. 삶의 깊은 의미와 사람됨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나이만 헛되게 먹은 것이다. 오죽하면 이 시대를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하겠는가. 어른들이 바로서야 가치가 바로서고 사회가 바로서는 것이다.

빌려온 책을 다 읽고 반납했다. 새로 읽을 책을 고르면서 나를 안으로 여물게 해 ‘있음’이라는 성숙함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그런 책을 고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떠본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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