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담는 그릇… 행복으로 채우려 했던 나의 삶이 담긴 그곳

“축하해요. 드디어 집이 팔렸어요!” 참 오래 기다려왔던 말이다.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들어간 광고비, 중개인들과의 연락, 기타 신경 쓰였던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에 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직접 가보지 않고 퀸즈랜드에 있는 집을 투자 주택이라고 구입한 지가 벌써 여러 해 되었다.

 

01_내 운명 좌우한 집… 이웃 소개로 남편 만나

단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크게 손해가 없는 한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어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금방 팔릴 것 같았던 집이 오늘까지 오는데 꽤 오래 걸렸다.

기본적으로 투자에는 그다지 신통치 않아서인지 일하면서 차츰 여유를 이뤄가는 것이 오히려 내겐 속 편하다.

집은 내게 많은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툇마루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내 유아적 사진 속의 풍경. 철욱이라는 남자친구와 어깨동무하고 앉아서 환하게 웃으면서 찍었던 사진 속 마루 앞마당 정원에 화려하게 피었던 여러 가지 색깔의 장미꽃들….

부모님은 자연을 좋아하셨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마당이 딸린 주택이었고 아빠는 큰아버지와 함께 집을 여러 채 직접 짓기도 했다. 작은 골목길 이층집을 찜 해놓으시고 큰딸인 나를 데리고 가 보이며 어떠냐고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다.

첫눈에 확 들어왔던 그 집. 이웃 소개로 지금 남편을 만나게 된 걸 보면 집은 내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 것 같다.

 

02_인테리어 디자인 공부 한다고 본 수많은 집들은…

좋은 집에 멋진 가구들을 늘어놓고 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바램이다. 90년대 초 미국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우린 가난한 유학생 부부였다. 가진 것도 없고 살림의 모든 것이 서툴기만 했지만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들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어린 에이미와 리즈를 돌보면서 세상에는 이런 집도 실제로 있구나 하고 놀랬다. 다섯 살밖에 안된 여자아이 리즈의 옷 방에 끝없이 걸려있었던 드레스들은 큰 충격이었다.

내가 오는 날이면 리즈의 할머니 마가렛은 언제나 어김없이 바나나 빵을 구워주었다. 문을 열면 풍겨졌던 달콤한 빵 냄새, 행복의 냄새였다.

그때부터였다. 집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인테리어 디자인 공부를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본 수많은 집들은 전문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집들이 많았다.

 

03_20대 초, 내 눈 만족시킬 그런 집은 한국 그 어디에도…

골프장을 마당처럼 끼고 들어서있는 수백만 불짜리 집들은 내가 떠나온 한국에서 살아왔던 집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러나 화려한 가구와 넓은 집들에 둘러싸여 이론적으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배웠지만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

언제나 내 집처럼 익숙해질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그러면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아파트 빌딩들이며 열악한 주택과 거리환경들은 나를 또 다른 열등감에 휩싸이게 했다.

20대 초 젊은 시절, 노출된 나의 눈을 만족시킬 그런 집은 한국 그 어디에도 없는 듯싶었다. ‘왜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지…’ 내게 마땅한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오랫동안 획일적인 아파트 빌딩 속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 미래의 세대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최근 들어 높아져 가고 있다. 공공사회와 단절된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 다른 수준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끼리끼리 만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고급 아파트촌….

 

04_집은 100채는 보고 구입하라?!

고립된 섬이라고도 표현한다. 똑같이 생각하고 생활하게 만드는 획일적인 삶…. 한국에 갈 때마다 각기 다른 가족들의 집들을 방문하지만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파트가 주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 동안 인생의 썰물과 밀물을 타고 다니다 우리는 아담했던 뉴질랜드 집을 팔고 호주로 이사 왔다. ‘집을 100채는 보고 구입하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신중을 기하라는 뜻인가 보다.

100채 까지는 못 미쳤지만 수많은 집을 보던 중이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살기에 방도 많고 큰 편이었던 그 집… 발을 들여놓는 순간 쿵쾅쿵쾅 뛰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이렇게 강한 느낌은 살면서 몇 번 받아보지 못했기에 그 집을 꼭 사고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게 되나 보다. 결국 우린 그 집을 구입했고 10년동안 무탈하게 잘 살아오고 있다.

 

05_앞으로도 내게 새롭게 주어질 집을 조심스레 상상해본다

작년에 부임한 교장이 어느 날 우리 집 구조에 대해 자세히 묘사를 한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어떻게 나의 집에 대해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가 그 집을 직접 빌더와 같이 지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이다. 참 놀랍고 드문 우연이 아닌가! 먼 훗날 나의 상사가 될 사람이 지은 집이라는 것을 10년 전 구입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 동안 수많은 집들을 색다른 경험으로 보았고 또 살아오면서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돌이켜본다. 비록 좋은 집에 멋진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은 아닐지라도 행복으로 채우려고 했던 나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경험하게 될 내게 새롭게 주어질 집을 조심스레 상상해본다. 창밖에 장미가 화사하게 피었다. 오늘은 이 꽃을 저녁식탁에 올려야겠다. 소파 커버를 바꿔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마가렛에게 배운 바나나 빵을 만들어 먹으면서 자상하고 사랑이 넘쳤던 그녀와의 따뜻했던 추억을 떠올려보고 싶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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