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저스틴은 캠시에서 알게 된 어린 친구다. 친구라고 부르기엔 낯간지러운, 20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서로가 반말을 한다. 꼬리를 잘라버리는 말투로 대화를 한다. 그는 잠을 언제 자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그림을 올린다. 방금, Winner, Section 5 라고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내왔다. 수상한 대회의 이름을 말하는 대신, 털북숭이 자신의 얼굴이 그림 옆에서 웃고 있다. 꽃다발을 보내고 싶지만 점점 커가는 상의 무게에 내가 보내는 작은 꽃다발이 초라할 것 같아 마음을 접는다. 한편으로 어린 친구가 큰 삶이 되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 Winner 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현실의 나를 흔든다. 나도 내려 놓으라고 속삭인다. 비워야 채워지는 삶을 모른체하는 내게 그가 길을 보여준다.

처음 그와의 대면은 내 무시로 시작되었다. 그 전날부터 이어지는 골치아픈 일들로 점심도 거른 채 씨름을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아직 사회초년생을 벗지 못한 앳된 청년이었다. 어눌한 말투로 어색한 질문을 했다. 친절할 기운조차 없는 내게 물어보는 내용들이 횡설수설이다. 일에 지쳐 신경질이 배여있는 내 목소리에서 귀찮아하는 느낌을 들었을 느꼈을텐데도 지속적으로 묻고 또 물었다. 얘기하는 것이 제법 비즈니스에 대한 계획이 서있는 것 같았다. 아예 종이를 꺼내 질문을 적어내려갔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어린 얼굴과 달리 구상은 기존 비즈니스를 꿰 뚫고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생각으로 사업을 하는 그를 보면서 그의 럭비공 같은 한계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클리닉을 몇 개로 확장했고 근처의 메디칼센터와 계약을 맺으며 기성세대의 방정식을 비웃듯 사업을 키워나갔다. 혼자만의 성을 쌓는다며 여행을 하고 주변의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부추겼지만 사업 이외에는 관심도 없었다. 시드니가 좁다고 뛰어다는 그는 얼마 후 의료 사업체가 5개가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중 군대를 마치고 복학의 길을 걷기보다 호주로 훌쩍 날아왔다는 청년. 우리들의 20대는 감히 외국을 나가려면 수많은 망설임의 벽을 넘어야 했는데, 용감한건지 무모한건지 그의 발길은 힘차게 내달렸다.

한동안 전화가 뜸했다. 가끔씩 툭 던지던 농담이 그리워질 때였다. 가까운 친구에게 하듯, 꼬리를 자른 특유의 말투가 들려왔다. 일에 꾀를 내며 징검다리로 결근을 하다가 출근을 한 날이었다. “아, 그동안 어딨었어? 물어봐야 할 것 같아 기다렸어….. 나, 체스우드와 애쉬필드 크리닉 접을래” 의료사무실을 현재 자신이 직접하고 있는 두 곳을 빼고 직원을 두고있던 크리닉을 모두 접겠다는 얘기였다. 프리미엄을 계산해 달라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냥 메디컬센터에 얘기하고 닫는다며 통보하는 것이었다. 고객들에게 손편지로 자신의 진료실을 다는다고 안내하는 그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지듯 돈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히히 거리고 웃는다.
그 며칠 후 ‘나 그림 그릴거야, 지금처럼 잘 지켜봐 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젊은이, 남들이 욕심 낼 그 사업을 대책없이 접었다고 잔소리하려는 인생선배가 더 이상 할말을 잃게 한다.
‘그려봐, 저스틴이라면 잘 할거야.’ 내가 해 준 말에는 영혼이 빠져있었다. 툭 던져버린 말투에 기분이 상했겠지만 모른체했다. 그림은 아무나 그리나? 철없는 아이같아 달랜다는 심정으로 대꾸했다. 저녁내내 찜찜했지만 통크게 클리닉을 던져버린 후유증이거니 싶어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나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림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저스틴이 시작하면 나도 슬슬 해 볼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과거를 넘나들었고 그 새벽에는 잠을 설쳤다. 딩동, 메시지가 온 소리에 일어나 앉았다. 거친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 전화기 화면에 걸려있었다. 정물화였다. 빛반사가 조금 어색했지만, 밤새 그렸는지 그림은 제법 완성되었고 구조나 정물은 그럴 듯 해 보였다. 어쩌면 미리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데상 단계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말까지 미술반에서 활동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겹도록 했던 목탄데상. 그림은 나를 과거로 데리고 갔다. 저스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의 그림을 보며 마치 내가 그린듯한 아픔으로 그림을 지적해갔다. 오랜 세월 저편에서 내 그림을 지도하던 이선생님이 그리워졌다. 그런 어른이 옆에 있어야 발전하는데. 저스틴이 밤새 그려가며 수백번 손길이 지나쳤을 파스텔 밑부분부터 얘기를 했다. 얘기하는 중에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 비싯하니 마음을 들쑤신다. 그에게 들킬까 말을 끊었다. 어쩌면 본업을 접고 꿈을 향해 가는 그가 부러웠던 걸까. 살아야 하는 현실에 주저앉은 평범한 이들은 삶에 발목을 잡혀 보낸다. 꿈은 기다려야 온다고 했다. 그 꿈은 노력한 이들에겐 좀더 빨리 찾아온다. 치열하게 쫒는 이들 앞에는 지름길이 보인다. 살고보니 이제 세상의 이치같다. 그래도 나는 하루를 현실과 타협하며 질질 끌려가는데, 그는, 나보다 스물살이 어린 그는, 꿈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자본주의에 길들인 나를 비웃으며 빈털터리로 밤새 그림을 그리고 친구라고 보내왔다. 거기에 대고 나는 훈수를 주려했다. 말이 이어지지 않자 그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무렵에 같은 그림이 다른 느낌이 되어 내 전화기에 담겨왔다. 그림자가 생기고 빛이 도착한 표면이 내 눈을 부시게 하는 그림이었다. 다음날 밤엔 어린 병아리들 다섯마리가 어미닭을 쫒아 숲길을 가는 그림이 태어났다.
그는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다. 어디에 작품을 내는 것도 아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전화기에 저스틴의 전화번호를 누르면 장면마다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을 시작한 지 반 년 정도 지나자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근무하는 메디칼센터의 한쪽 코너에서 전시회도 했다. 그 여세를 몰아 작은 대회에 출품했다. 작은 상을 탔고 알음알음 독선생을 찾아 사사를 받기도 했다. 수염이 텁수룩한 그가 클리닉에 들어서면 눈빛이 반짝거리고 깔끔해 진다는게 신기했다. 흰 가운이 주는 힘 같다. 그러기를 3년, 이제 그는 대상을 받았다.

취미의 차원을 넘은 그의 삶이 또다른 정상의 언덕에 올라섰다. 내 어린 친구는 혼자서 호주로 와 영주권을 챙겼다. 두려움 속에 호주로 오는 샛길로 들어섰다는 그. 전문가의 길을 마치고 사업가로 우뚝 섰다가 미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낮에는 여전히 2개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호주라는 곳은 이렇게 넓은 시장이 펼쳐져있는 곳 같다. 학풍이고 학파, 졸업학교를 따지지 않고 작품 한가지로 평가하는 이곳에서 좌절을 털어낸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훨훨날기 시작했다.
아마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거뭐쥐며 곧 유럽의 미술계에 도전장을 낼 것 같다. 멋지다. 대한의 아들이 호주라는 땅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모습에서 기대어 나도 뿌듯하다.
우리들 모두에겐 꿈이 있었다. 세상의 틀에 짜인 삶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만다. 그를 보며 꿈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나도 손에 쥔 일상의 얼개를 놓아야 할텐데.
대상 작품의 제목은 ‘집으로 가는길’이다.

 

장 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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