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운 답 말하기보다는 자기가 한 질문에 스스로 답 찾아가기를…
코로나19사태를 통해 각 나라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에서 K-방역이 모범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문전박대를 당할 당시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국은 가깝게는 일본, 멀리는 미국과 유럽 몇 나라의 뒤를 늘 따라가는 후발주자가 아니었던가.
01_1977년,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B형 간염 백신 개발했지만…
최진석 교수의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의 강연에 소개된 일화가 그런 세월을 대변해준다. 1977년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의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했다고 한다. 김정룡 박사에 의한 쾌거였다. 안타깝게도 그 백신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데, 당시 우리나라 보건사회부에는 백신의 사용을 인증해줄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나고 미국과 프랑스가 백신을 개발하고 상용화한 후에야 그 인증 기준치를 빌려 썼다고 한다. 강연자는 “스스로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데 필요한 힘은 자발성, 독립성, 그리고 주체성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나 스스로 주인이 되어보겠다’는 의지라고 말한다.
선제 대응이 없었다면… 일반인들은 전염병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던 올해 1월 말, 중국 우한에서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만일 한국 정부와 보건 관계자들이 그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만일 인천 의료원의 한 의사가 승차 구매 모델을 의학계에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경북의 칠곡 병원장이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병원에 신속하게 적용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확진자 수가 많지 않다고 진단키트 개발을 주저했더라면….
02_그에 맞는 답 찾으려 지체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이들의 공
K-방역의 성공은 ‘이걸 누가 다… 이걸 언제 다…’라고 하는 대신, 팬더믹을 나 스스로 해결할 문제로 받아들인, 대한민국이 기준이 된 사건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당장 눈앞의 불만 끄려 했다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성과다.
스스로 질문하고 그에 맞는 답을 찾으려는 수고와 논의된 일을 지체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이들의 공이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내렸던 과소평가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에 대한 과대평가 사이의 균형점을 찾게 했다.
한국, 방역 교과서를 쓰는 나라. ‘가장 체계적이고 정확한 방역 시스템을 갖춘 나라’라는 각국의 찬사에 대해 예방의학 전문가 기모란 교수는 2015년 메르스가 한국을 강타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 외의 여러 나라에서 메르스에 대한 연구자료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한국 관계자들은 보고서를 작성하려 했지만, 이미 환자들은 회복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03_메르스 사태 땐 검사기록 체계화 의견냈다가 높으신 분 야단을…
검체를 모으고 발견된 바이러스의 수에 따라 투입한 약의 종류 그리고 부작용 등등 치료과정에 대한 총체적 데이터는 감염 초기부터 기록해야 했다. 검사 기록을 체계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도리어 높으신 분들에게 야단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5년 후 코로나19가 한국에 상륙했다. 바이러스의 성격상 전염력이 가장 왕성한 때는 증세가 나타나기 전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모르던 때였다. 최초의 확진자에게도 미열 외에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보건 당국과 의학계가 메르스 때 겪었던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치밀하고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지금쯤 방역 교과서를 쓰는 대신 사망자 수를 놓고 미국과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자인심. 팬더믹 초기에 유럽 곳곳에서는 중국과 한국인을 혐오한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제 1번 확진자가 되어 남의 나라 의료진의 신세를 져야 했던 중국 여성은 얼마나 좌불안석이었을까.
04_내 집에 닥친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
완치된 후 병원을 떠나면서 건넨 그녀의 편지엔 ‘의자인심’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병을 고쳐주는 의사에게 어진 마음이 있다.’ 이방인을 따뜻하고 극진하게 보살핀 우리나라 의료진의 품성이 환자가 쓴 글에 그대로 배어 있다.
“주인이 되는 삶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범위 안에 제한되지 않고, 그 사회의 변혁과 발전, 그 사회의 진정한 품격에 기원이 된다”라는 최 교수의 강연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5월 24일 현재,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한 감염의 고리가 6차까지 확산하여 전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방역 당국은 신천지 사태보다 더 복잡하고 은밀하게 세력을 뻗으려는 코로나19와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1차 감염 속도를 꺾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이 다양한 모습으로 출연할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을까? 방역의 기준이 되기를, 외운 답을 말하기보다는 자기가 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를, ‘내 집에 닥친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는 대한민국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글 / 박해선(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