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자 국가운영의 구성원들이었던 공직자들이 좌불안석 눈치보기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한다. 삶의 철학도 가치관도 없이 홍시만을 쳐다보면서 감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누워있던 인간들의 갑갑한 얘기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자 봉급만 축내면서 만만디 하던 ‘늘공’들도 비상 이란다. 정권이 바뀌면 ‘좋은 게 좋다’며 적당히 권력자 눈치나 보면서 손바닥이나 비비던 인간들은 좌불안석이 되는 거다. 하지만 확실한 삶의 좌표를 가진 인간들은 눈치 볼 일이 없는 거다.
공직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담당하고 집행하는 사람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공직자의 자세는 국가 흥망성쇠의 기본이다. 그들의 행동은 국민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공직자가 썩으면 국가가 흉년이다. 공직자가 건강하면 국가는 풍년이다. 나의 주장이 아니라 만고진리다.
새 정부 들어 국정기획위원회가 설립되어 국가의 기본을 정립하기 위해 각 부처의 업무를 검토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은 부서가 방송통신위원회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에 관한 심의규제와 이용자보호 등의 업무를 관장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한다. 방송통신의 자율성은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다.
방통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이진숙의 업무보고내용이 궁금했다. 그는 정권언론장악에 앞장서 언론가치를 짓밟은 인물이다. 그는 대전MBC사장 재직시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제기됐었다. 집 앞 빵집에서 백여 만원의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자 그는 업무추진을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 인격제로 ‘빵진숙’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는 방통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는 정부에 쓴 소리 하는 언론사를 뒤엎고 민주주의 숨통을 조이려는 불법적인 일들을 거리낌없이 단행했다. 권력에 빌붙어 호의호식 하겠다는 쓰레기들 중 하나다.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실시한 방통위원회업무보고 회의에 이진숙은 불참했다. 지난날의 불법과 비정상적인 업무처리에 대한 지적이 두려운 비겁한 도피였다. 그가 폭망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참석한 방통위 공직자들도 시행한 업무에 대해 ‘난 모르외다’로 일관했다. 썩어빠진 공직자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았다. 전 정부에서 시행했던 업무에 대해 원칙과 정당성을 소신 있게 주장한 공직자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좋은 게 좋다면서 힘있는 자와 가진 자에 빌붙어 살아온 간도 쓸개도 다 내놓은 인간 버러지들의 모습이었다.
하긴 공직자뿐만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노라면 어디든 힘있고 가졌다는 인간들에게 빌붙어서 버러지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꽤 있다. 인간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나 자긍심도 던져버린 인간 쓰레기들이다.
뉴질랜드 교민사회에 몇 개 언론사가 있었다. 그 중에서 교민들이 보기에 ‘그래도 좀 괜찮은’ 언론사는 2곳이었다. 한 언론사는 한국에서 <세계일보> 기자로 일했던 인물이 운영하는 <일요신문>이었고, 다른 언론사는 광주에 있다는 <무등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는 인물이 운영하는 <위클리코리아>였다.
두 언론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했다. 교민들 대다수는 세계일보기자 출신이 운영하는 <일요신문>의 기사나 정보나 논단을 선호했다. 어느 날, <일요신문> 대표가 교민사회에서 건강식품으로 떼돈을 벌던 ‘에버그린라이프’ 사장의 부정한 행태에 대해 논단을 썼다. 에버그린라이프 사장은 가진 돈을 미끼로 교민사회 권력자처럼 행세했다.
교민사회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에버그린라이프 사장은 <일요신문>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떼돈을 번 에버그린라이프 사장은 한국의 대형로펌 ‘김엔장’에 버금간다는 뉴질랜드로펌에 변호를 의뢰했다. 그는 “일요신문 이 쌔끼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돈 없는 <일요신문>은 패배가 거의 확실했다. 에버그린라이프 사장은 증인으로 <위클리코리아> 대표를 선정했다. 에버그린라이프는 <위클리코리아>의 대형광고주였다. 당시 나는 <위클리코리아>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었다.
재판 일이 다가오자 나는 <위클리코리아> 대표에게 말했다. “같은 업종으로 경쟁을 한다지만, 기사를 쓴다는 사람으로서 논단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인의 증인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다. <일요신문>의 그 논단이 옳건 그르건 간에 소송인 증인으로 나선다는 것은 도의적으로 좀 그렇다. 나서지 마라.”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위클리코리아> 대표는 <일요신문> 논단이 명예훼손이라는데 동의한다는 증인으로 법정에 나섰다. 나는 <위클리코리아>에 쓰던 칼럼을 중단했다.
사람들은 좋은 게 좋다고 한다. 사는 것이 힘든 나 같은 사람에겐 참 편한 말이다. 그저 권력의 핵심을 기웃거리는 이진숙이나, 돈 좀 가졌다는 인간에 붙어있던 <위클리코리아> 대표처럼 좋은 게 좋다며 양심, 도덕, 자존, 자긍, 가오, 뭐 그런 것들 다 버리고, 잘 먹고, 잘 자면 인생 참 느긋하고 편안한 거다. 비록 네발 달린 짐승과 다를 바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진숙이나 <위클리코리아> 대표의 행태를 보면 좋은 게 좋다는 것에 메스껍고 열불이 난다.
아 참!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일요신문> 대표는 신문사 문닫고 고기뷔페음식점을 차려 여유롭게 산다. 명예훼손소송을 걸었던 에버그린라이프 사장은 승소하고 1년도 안돼 폐암으로 죽었다. 증인으로 나섰던 <위클리코리아> 대표는 쫄딱 망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