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들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5000발 이상의 로켓과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이스라엘국민 수 천명이 사상하고 수 백명이 인질로 사로잡혔다. 이스라엘은 혼란에 빠졌다.

이스라엘 퇴역장군 (將軍) 지브는 같은 퇴역장군 출신 티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티본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아들이 고립됐다며 지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브는 전화를 끊은 뒤 9mm권총 한 자루를 챙겨 자신의 아우디 차량을 몰고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 가자지구로 향했다. 두 베테랑 퇴역장군은 정부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직접 현장을 진두지휘 하러 나선 것이다.

베테랑 장군들이었던 지브와 티본은 가자지구로 향하는 도중 부상으로 낙오된 병사를 구했다. 그들의 차량으로 하마스의 총알이 날아들었다. 지브는 부상당한 병사로부터 M16소총을 넘겨받아 응사하며 달렸다. 그렇게 해서 티본의 아들을 구했다. 그들은 정부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라며 국가안보정책을 맹렬히 비판했다.

미국 육군참모총장출신 마크 밀리 (Mark A Miley) 합참의장은 지난 9월 29일 임기를 마치고 합참의장 자리를 물러났다. 버지니아주 메이어기지에서 열린 합참의장 이취임식에서 마크 밀리는 말했다.

“우리가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것은 국가도, 집단도, 종교도, 왕이나 왕비도, 폭군이나 독재자도 아닙니다.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 (a wannabe dictator)도 아닙니다. 우리가 개인을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것은 미국의 헌법이고 미국이라는 이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를 합니다.”

이는 미군장교의 임관선서 ‘나는 국외 및 국내의 모든 적으로부터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겠다’와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이 이임사에는 배경이 있다고 한다.

미 합참의장은 미군 서열 1위로 210만명의 미군을 대표하는 자리다. 밀리 의장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 그가 말한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는 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오바마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합참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해병대사령관출신 조지프 던퍼드였다. 던퍼드는 강직한 성격으로 트럼프가 좌지우지할 인물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국방장관이 추천하면 승인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직접 후임자를 골랐다. 그가 마크 밀리다.

트럼프는 마크 밀리를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트럼프가 마크 밀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거다.

트럼프는 대통령시절 비서실장에게 자기도 히틀러처럼 완전히 충성하는 장군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짐작하게 하는 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군의 수장을 원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그 해 5월 위조지폐 사용혐의로 흑인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경찰관의 무릎에 깔려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흑인은 저항하지도 않고 숨을 못 쉬겠다며 호소했는데도 경찰관은 무릎으로 목을 압박했다.

여론의 분노가 폭발했다. 일부지역에서는 무장폭동 양상까지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당지역 주지사에게 주 방위군을 동원한 강경진압을 주문했다. 그러나 주지사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거부했다. 트럼프는 합참의장 밀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밀리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나는 군인입니다. 미국의 기본원칙은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그후 합참의장 사퇴압력이 있었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불안해하면서도 끝끝내 임기를 채웠다.

밀리 다음 합참의장은 공군참모총장출신 흑인 찰스 브라운 장군이다. 브라운 역시 대통령이 함부로 휘두를 수 없는 원칙주의자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미군을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힘은 군 수뇌부가 군이 지켜야 할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가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한국에서 물난리로 실종된 사람을 수색하다가 해병대 병사가 물살에 휩쓸려 사망했다. 사건을 수사한 엄정한 수사단장은 해병대사령관 및 해군참모총장은 병사의 죽음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은 해병대 장군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대통령의 지극한 굄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 장군들은 비굴했다. 정치에 개입해 수사단장을 명령불복종 혐의를 씌워 잘라버렸다. 해병전우회는 장군들 물러나라고 항의했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소리일 뿐이다.

이스라엘 장군들, 미국 장군들, 한국 장군들의 실루엣이 눈앞을 어른거린다. 밤이 깊었는데 잠은 안 오고 술 한잔이 생각난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기다림의 미학?!
Next article사업시스템과 특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