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다툼

우리 숙소를 마포에서 영종도로 옮기던 날, 공항철도가 아주 많이 복잡하진 않았지만 군데군데 사람들이 서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나란히는 아니었어도 서로 마주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발 앞에 놓고 있자니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옆 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3미터쯤 떨어진 캐리어적재함에 옮겨놓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몇 초의 짧은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는데 제가 앉았던 자리는 어느새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습니다. 맞은 편의 아내도 당혹스런 표정이었고 제 옆자리 사람들도 “저분이 캐리어 옮겨 놓느라 잠시 일어서신 거예요”라며 편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저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어르신이면 저쪽 노약자보호석에 앉으시든가요…” 하며 외면을 했습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아내 앞에 서서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그 여성은 개의치 않고 핸드폰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다행이 한 정거장을 지나 아내 옆자리가 비기는 했지만 순간 들었던 황당함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긴 했습니다. 남대문시장에 갔다 오는 길,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우리는 몇 정거장을 서서 갔습니다. 제가 서있는 바로 앞자리가 비길래 제 곁의 아내에게 “자기야, 여기…” 하는데 어디선가 60대 여성 한 명이 총알같이 날아와 박히는 것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한국 지하철 자리다툼이 눈앞의 현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몇 년 전, 아쿠나베이 낚시터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이른바 명당자리를 도맡아 차지하던 노인이 있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점심시간 무렵부터 와서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는데 부인과 장모까지 대동해 낚싯대 다섯 개를 꽂아놓고는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일절 불허하는 바람에 웬만한 사람들은 그 근처에도 못 갔답니다. 요즘은 그들 일행이 눈에 띄지 않는 것 같기는 한데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유감스런 일은 성당에서도 존재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자리 다툼 혹은 자리 맡기가 존재합니다.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식당임에도 그곳은 늘 많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듯싶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몇몇의 사람들이 심하게 자리 맡기를 한다는데 있습니다. 부부간에 한 사람이 자리를 맡아두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아니, 좀더 양보해서 가족 몇 사람의 자리를 확보해두는 것까지는 양보한다 해도 얼마 전 상당히 당혹스런 일을 겪었습니다. 맛있는 연어회덮밥을 두 그릇 사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리들이 한두 사람씩에 의해 이미 ‘맡아져’ 있었던 겁니다.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어찌어찌 맨 끝 쪽에 빈 자리가 보여 다가갔더니 저만치에서 한 노인이 “여기 자리 있어요.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하며 우리를 제지했습니다. 기가 막힌 건 그 한 사람이 맡아놓은 자리가 테이블 두 개, 열대여섯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여기는 전부 다 내가 맡아놓은 자리이니 꿈도 꾸지 말라’는 표정으로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거들먹대는 것이었습니다.

미사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몰려나가 미리 자리를 확보해놓는 그 사람들은 쉽게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식사를 다 하고서도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잡담들을 하며 노닥거리고…. 결국 그날 아내와 저는 성당 뒤쪽 벤치에 앉아 무릎 위에 그릇을 놓고 밥을 먹었습니다. “아니, 왜 여기서 드세요?” 지나가던 지인이 웃으며 한 마디 던집니다. 덕분에(?) 야외식사를 즐긴 셈이 되긴 했지만 일부 욕심 많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처럼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매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리를 못 잡은 한 자매님은 “자리가 없어서 못 먹겠어요”라며 손도 대지 않은 식판을 주방에 돌려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가족이나 친지들을 위해 한두 자리, 서너 자리를 맡아놓는 건 그래도 봐줄 수 있겠지만 말도 안 되는 수의 자리를 욕심 내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도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성당에서 그 같은 욕심을 내는 건 심각한 모순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어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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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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