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이하의 자녀에겐 모든 사랑의 언어 골고루 사용, 표현해줘야
무조건적으로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가출하는 10대들은 대부분 자기를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님들만큼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분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01_자녀를 부모가 원하는 방식대로 키우려는 욕심 내려놓아야
하지만 많은 부모님이 지나치게 자식들을 위함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두 개의 드라마를 예로 들어 봅니다. 하나는 ‘다섯 손가락’ 그리고 다른 하나는 ‘메이퀸’입니다. 그런데 두 드라마의 공통적인 점은 혈연관계에 대한 지나친 편견 즉, 부모가 자신의 친 자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나친 집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두 드라마에서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친 자식이 아닌 줄 알았을 때는 갖은 핍박과 속임수로 괴롭혔고 죽이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후일 똑 같은 아이들이 자신의 친 자식인 것을 깨닫게 된 이후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지나치리만큼 이기적이고 폐쇄적이라 할 만큼 자신의 친 자식에게는 무조건적 사랑을 하시는 분들이 바로 우리네 부모님들이고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우리의 자녀들은 그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것은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 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부모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식들을 통제하고 조정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부모님이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을 사랑하기 보다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부모들은 부모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조건적으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를 부모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키우려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가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은 능력이나 외모의 어떠함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02_자녀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또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녀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마다 주로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가 다릅니다. 게리 채프만이 말하고 있는 5가지 사랑의 언어 즉, 육체적 접촉, 함께 하는 시간, 인정하는 말, 선물, 봉사 중에서 가장 주되게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쉽고 잘 사용하는 언어로 자신의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익숙한 언어이기에, 본인 역시도 상대에게 가장 많이 받고 싶은 언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상대에게 사랑을 표현하려 합니다. 본인들은 사랑의 언어를 상대에게 열심히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사랑을 받은 당사자들은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의 언어를 알아서 표현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다섯 살 이하의 자녀에게는 모든 사랑의 언어를 골고루 사용해서 표현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1의 언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나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5가지 모두를 사용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자녀가 커감에 따라 주요 언어가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골고루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사랑의 5가지 언어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5가지 사랑의 언어를 골고루 사용하는 성인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어른의 특징은 5가지 모든 사랑의 언어로 사람들과 감사를 주고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한 두 가지 언어로 사랑을 주고받을 뿐 사랑의 언어를 모두 구사하는 어른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상대의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 자신의 언어와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함께 익히게 되고 균형을 이룬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모두가 잘 의사소통 되는 그곳이 바로 이 땅의 천국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글 / 김 훈 (목사·호주한인생명의전화 원장·상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