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그러고 보면 저는 참 무심한 아니, 참 못된 것 같습니다. 마음 착한 아내가 연신 눈물을 글썽이며 “해삼아, 해삼아…”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몸도 주물러주고 하는 동안 저는 그냥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축 늘어진 녀석의 입에 아내는 손가락에 물을 묻혀 갖다 대보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던 튜브고기를 찍어 먹여보기도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해삼이는 우리 병원에 다니고 있는 개와 고양이를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아요. 고양이가 열여덟 살이면 정말 오래 살고 있는 건데 지금으로 봐서는 건강도 괜찮고 앞으로 1-2년은 더 살 것 같아요.” 두 달 전쯤 해삼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을 때 그곳 원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녀석이 얼마 전부터 밥도, 과자도, 고기도 잘 안 먹긴 했지만 앞서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설마 했습니다. 하지만 그 며칠 전부터 녀석의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지더니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은 다음 날 오후, 해삼이는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06년 3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녀석은 몸 크기가 제 주먹보다도 작고 걸음도 뒤뚱뒤뚱 하는 아기였습니다. 저는 그런 녀석이 너무 소중하고 예뻐서 한동안 해삼이를 제 가슴 한 켠 옷 속에 넣고 재우곤 했습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녀석은 저를 배신(?)하고 아내를 훨씬 더 좋아하며 아내 껌딱지가 돼버리긴 했지만 그로부터 열 여덟 해를 넘게 함께 지냈으니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었습니다.

저야 뭐, 녀석과 데면데면 지내면서 가끔씩은 못되게(?) 굴기도 했지만 마음 예쁜 아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삼이에게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가 없는 건지 얼마 전부터는 녀석에게서 이상한 냄새도 나고 전에는 없었던 배변실수도 가끔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단 한번도 싫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습니다.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설마’ 했었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한동안 비실대다가 다시 씩씩해지곤 하는 녀석이 그렇게 쉽게 무지개다리를 건널 줄은 몰랐습니다. ‘못되게 굴지 말걸, 좀더 잘 대해주고 잘 챙겨줄걸…’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고양이들이 하늘나라에 갈 무렵이 되면 주인한테 와서 자꾸 부비거나 곁에 있으려 한답니다. 돌이켜 보니 녀석은 그 며칠 전부터 우리가 식탁에 앉으면 아내의 의자 혹은 제 의자 밑에 소리 없이 앉아 있곤 했습니다. 말은 못하지만 녀석은 그렇게 우리에게 ‘이별준비 신호’를 보냈던 모양입니다.

“고양이는 전혀 손 갈 데가 없어요. 배변도 정해진 곳에 정확히 하고 지 몸 관리도 지가 알아서 하고 말썽 피우는 일도 전혀 없어요. 붙임성은 강아지가 훨씬 더 좋지만 다시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우리는 고양이를 키울 거예요.” 아주 오랫동안 주변사람들에게 자랑 삼아 했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해삼이는 우리 집에 온 이래로 자신의 변기 외에 다른 곳에 실례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른 집 고양이들은 소파나 가구를 긁어서 망쳐놓곤 한다는데 녀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애지중지하던 녀석을 생각보다 일찍 떠나 보낸 아내는 저보다는 더 큰 슬픔을 애써 참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녀석이 사람으로 치면 ‘구구팔팔이삼사 (9988234) 즉, 아흔아홉(99)까지 팔팔(88)하게 살고 이삼(23)일 앓다가 죽는(4) 것’ 그 이상을 실천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기대수명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에 더해 끝까지 심각한 병치레, 큰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했다는 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녀석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적도 있었고 이래저래 짜증도 내고 못되게 굴었던 일들은 새삼 미안함으로 다가옵니다. 문득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로 시작되는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됐든 반려동물이 됐든 특히 내 식구한테는 그야말로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건 아직까지도 저의 생각이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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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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