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자고 술 끊고?

“에잇!”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거의 세 시간 동안을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잠이 1도 오지 않았습니다. 5분에 한번 꼴로 이리 누웠다가 저리 뒤척이는 짓을 계속하다 보니 옆의 아내까지도 덩달아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그전 이틀 동안은 상황이 조금 나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두 시간 가까이 헤매다가 어찌어찌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날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길로 서재에 내려가 두 시간 정도 일을 하고 올라와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진 수면패턴이 그리 쉽게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우리는 야심 차게 시작했던 ‘일찍 잠자리에 드는 프로젝트’를 작심삼일(?)로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몇 달 전 ‘늦어도 밤 열한 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우리 몸은 스스로 손상된 세포를 탈락시키고 새로운 세포를 생성해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을 방어하는데 이 과정은 잠을 자면서 전개된다. 그런데 이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간대가 새벽 1시-2시여서 이 시간에는 반드시 잠에 들어 있어야 한다.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대부분 몸이 약한 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건강한 이유가 그것이다’라는 요지의 방송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는 보통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특히 목요일 밤부터 주말 동안은 새벽 한 시, 두 시를 훌쩍 넘겨가며 잠자리에 들어 다음 날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늦잠을 자곤 합니다. ‘이 참에 우리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져보자’던 계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지만 ‘시간에 상관 없이 자고 싶을 때 자는’ 종전의 패턴을 되찾은 우리는 지금 너무너무 편안합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코리아타운 마감을 마치고 우리는 예외 없이 둘만의 술자리를 갖습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한 스스로를 향한 보상(?) 차원에서입니다. 그렇다고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건 아닙니다. 아내가 정성 들여 준비한 맛있는 음식에 위스키 세 잔 혹은 다섯 잔 정도가 고작입니다.

한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답을 못할 정도로 술을 들이붓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몸을 많이 사립니다. ‘소주를 박스째 놓고 마신다’는 말이 남의 얘기가 아니었고 혼자 마신 위스키가 세 병 반, 그것도 동석자들이 모두 기절(?)하는 바람에, 그걸로 끝난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마셔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노릇입니다. 그저 몇 잔 기분 좋게 마시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하는 건데 아내의 권유도 있었지만 저 스스로도 그 정도로 만족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저의 가장 가까운 술친구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나, 오늘 너무 많이 마셨어. 벌써 다섯 잔째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소주잔에 맹물을 따라 저와 잔을 부딪치며 아내가 던지는 말입니다.

“자기, 정말 날씬해졌다. 팔이랑 다리에 근육도 많이 생겼고 배도 많이 들어갔어. 좀더 있으면 배에 왕(王)자 생기겠는걸?” 역시 말도 안 되는 호들갑입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나도 확실히 살을 빼야겠다”며 술을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술 그리고 함께 먹게 되는 안주들이 건강과 다이어트 최대의 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맹물이 담긴 잔으로 ‘짠!’을 외치고 그 맛있는 음식들을 깨작깨작할 수 있는지….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아내의 그 같은 독한 결정을 응원합니다.

지난 월요일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느닷없이 주방에서 에어프라이어 돌아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뭐지? 싶었는데 잠시 후 아내가 맛있게 구워진 닭봉 한 접시와 맥주를 들고 나왔습니다. “배가 고픈 건 아닌데 갑자기 속이 궁금해….” 아내는 멋쩍은 웃음을 띠었습니다. 살을 뺀다는 일념으로 맹물을 고집하던 아내의 그런 모습이 왠지 귀엽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날 우리는 기분 좋게 맥주잔을 부딪쳤습니다. 맹물이 아닌, 양쪽 다 맥주로 가득 찬 유쾌한 잔으로…. 평소 열심히 노력하다가 가끔 갖는 일탈… 이 또한 삶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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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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