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들

선배지인 부부 중 이런 커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쁜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벌금 5불!’ 그분들이 정해놓은 부부간의 약속이자 규정(?)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아예 안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 흉을 보거나 그들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내면 무조건 5불씩을 벌금으로 내야 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분들을 만나면 건강이나 여행 혹은 낚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여행과 낚시를 좋아하는 그분들에게는 늘 이야기보따리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습니다. 간혹 손자손녀들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건 애초부터 남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하고 사랑스런 이야기들이니 벌금 같은 걸 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 이야기를 많이 하며 지내는데 여러 가지 말들을 주고 받다 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나쁜 쪽으로 가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게다가 말이라는 게 건너갈수록 살(?)이 붙게 마련이어서 작게 부부싸움 한번 한 사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워 이혼소송 중이다’로 커지게 되고 그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든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설화 (舌禍: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재난)에 휩싸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우리도 100퍼센트까지는 아니어도 되도록 남에 대해 좋은 생각, 좋은 이야기들을 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아무리 이해하고 참고 넘어가려 해도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양아치 쓰레기들한테까지는 그 원칙과 노력이 닿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 부류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좋은 사람일 테지만 거기까지는 참 쉽지가 않습니다.

요 며칠 선배지인들과 식사자리를 함께 하는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우리를 예쁘게(?) 봐주는 선배지인들 덕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커피잔을 마주하며 웃음꽃을 피운 시간들은 아내와 저에게 소중한 ‘힐링타임’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남들 이야기가 아닌 건강과 여행에 집중됐습니다. 즐겁게 다녀온 이야기 혹은 앞으로 갈 곳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다 보면 몸도 마음도 즐거워집니다.

연말연시를 이용해 40여일 동안 타스마니아 캠핑여행을 다녀온 걸로도 모자라 40일이 넘게 한국을 휘젓고(?) 다니다가 지난주에 돌아온 그분들은 80과 78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의 젊은 동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피로도 채 안 가셨을 텐데 다음 주 초 4박 5일 일정으로 이번에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라이트닝 리지 온천여행을 떠난답니다. “지금 다녀야 해요. 조금 더 지나면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녀요”라고 역설하는 그분들한테는 피로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때 제가 들었던 ‘인조인간’이라는 별명은 그분들에게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우리 산행팀에는 1949년생 동갑내기 3총사가 있습니다. 올해 일흔 넷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분들은 언제나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탄탄하고 강인한 체력으로 다져진 인조인간 ‘소띠 3총사’들을 보면 아직 그분들보다 한참 어린 저는 한없이 약하고 찌질하기만 합니다.

또 한 팀의 인조인간들이 있습니다. 앞의 인조인간들보다는 한참(?) 어린 예순아홉, 예순일곱의 이 강철부부는 다음 주 초 ‘대단한 출정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프로드 여행 마니아이기도 한 이들 부부는 1년 일정으로 단둘이 호주 전국여행을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서 그 동안 해오던 일들도 모두 정리하고 명실상부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자신들의 집에는 테넌트를 들였고 크고 작은 세간살이와 소중하게 간직했던 애장품들도 과감하게 떨쳐내는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그렇게 1년간의 호주 전국여행이 끝나면 이들 부부는 최소 그만큼의 기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한달 살이’를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늘 우유부단하고 찌질하기만한 저는 요즘 대단한 인조인간들의 과감한 결단과 실행을 보면서 그들의 족적을 닮아가기 위한 작은 날개 짓을 조금씩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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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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