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계에서 이룰 수 있는 과업 충분히 이루고 단계마다의 의미 경험해야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골드코스트 놀이공원에 가게 되었다. 예전에 같은 곳을 방문을 했을 때는 막내아이가 너무 어려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서 모든 기구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하며 들떠서 그런지 첫날에 놀이기구를 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으로 씨월드 (Sea world)에 있는 리비아단 (Leviathan)이라는 롤러코스트를 아이들과 함께 타게 되었다.
01_ 놀이기구 타는 연령 있듯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런데 무서운 것보다 평소 디스크 끼가 있는 목으로 인해 타자마자 심하게 흔들리는 롤러코스트 안에서 목이 자극을 받자 바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고 그 상태로 내리자마자 숙소로 돌아와야 했고 속은 심히 뒤틀려 토할 것 같았다.
한참이나 쉬어도 본래의 컨디션으로 잘 돌아오지 않는 나를 보며 그제서야 ‘더 이상 롤러 코스트를 탈 수 있는 나이가 아니구나’라는 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무비월드 (Movie World)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등쌀에 떠밀려 함께 놀이기구를 탄 남편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잘 탈 수 있는 연령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발달 (Development)이라고 말한다. 신체적인 나이를 보면 사람은 20대 초반까지 다 성장을 하고 20대 중반부터는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노화가 시작된다.
신체적 기능이 노화되기 시작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인지적 기능도 퇴화하기 시작하지만 인간의 모든 삶의 과정을 ‘발달’ 이라 설명한다. 비록 인지나 신체적 기능이 떨어져도 인생의 계절을 지나가면서 인간은 성숙되고 발전되어 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때가 있어야 봄이 오는 것처럼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 또한 그 의미가 있으며 달성해야 하는 과업들이 있다.
국민강사로 불리는 김창옥 씨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사춘기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억압 가운데 자신을 찾지 못하면 중년기 위기를 심하게 겪는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면 인생의 단계들에서는 경험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는데 그 과정들을 제대로 겪지 못하면 생의 다른 시기에서 그것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에 한 번도 놀러 가지 못하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던 맏언니가 나이가 들어서 춤바람이 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평생 순종적이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밥을 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성실하게 일만 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오토바이를 거금을 주고 사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므로 인생의 발달단계를 지나갈 때 그 단계에서 이룰 수 있는 과업을 충분히 이루고 단계마다의 의미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
02_중년의 위기, 이전엔 머리로 이해했지만 지금은 몸으로 경험
가끔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발달되지 못하고 심한 퇴행이나 정서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아동 양육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엄마 아빠가 멀쩡하고 훌륭해 보이는데 아이가 왜 그렇지? 라고 살펴보다 보면 거의 100%에 가깝게 발달 단계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부분에서 결핍된 부분들이 원인인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엄마와의 신체적 접촉과 상호작용을 통해 안정감을 누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시기에 부모와의 불안정한 관계로 인해 혹은 부모의 직장으로 인해 아이가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를 누리지 못했을 때 유치원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이는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분리불안을 심하게 경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한 인간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 사회의 일원이 되어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과업들이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 때에 과업을 달성하는 데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발달심리학자이자 아동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단계를 심리사회적 관점에서 8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의 과업달성을 중요시 여겼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신생아는 신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는 자율성, 주도성,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근면성, 청소년기에는 정체성, 성인이 되면 친밀감, 그 이후 중년기는 생산성, 노년기에는 자아통합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는데 이런 과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부작용으로 불신, 수치심과 의심, 죄의식, 열등감, 혼란, 고립감, 침체, 절망이 온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생산성 혹은 침체성이 있을 수 있는 중년기에 있는데 중년이 되면 왜 위기가 있는지 이전에는 머리로 이해되었다면 지금은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예전같이 활발하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녀들은 커버려서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살아간다. 인생을 돌아보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지만 특별히 이룬 것도 많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로 인해 침체기를 경험하게 된다.
03_나에게 있는 자원 활용, 더 높은 차원의 가치 추구해야
이제는 인생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있을 때 그 동안 추구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꿈과 가치를 돌아보게 되면서 그것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이 중년기다. 이때 내가 살아온 나만의 삶을 전부 부정하거나 안타깝게만 보지 말고 그것 또한 가치 있었던 삶의 여정으로 바라보며 남은 생을 조금 더 치 있게 살 수 있도록 삶을 점검하고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삶을 보상하는 것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칫 잘못하면 극단적인 변화의 모습을 추구하다 주위의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롤러코스트를 즐기면서 스릴과 모험을 추구하는 젊은 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생산성 있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있음에 감사하며 할 수만 있다면 가족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지금의 중년기를 잘 지내보려 한다. 지난 세월 이루지 못한 과업에 연연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전히 일할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는 삶의 부분에서 현재의 과업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가끔, 나이에 맞지 않게 무모한 일을 시도하려는 분들을 보게 된다. 용기가 있는 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생의 발달단계에서 과거에 못 이룬 과업이 부작용으로 지금도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과도한 시도들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분들은 현재의 나이에서 이루어야 할 과업이 어떤 것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무모함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있는 자원을 활용해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글 / 서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