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어수선한 세상이지만 계절의 도도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어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에 닿아 있습니다. 제가 즐겨 입던 보라색 반팔 티셔츠도 슬그머니 사라졌고 집에서 수면잠옷을 생활복(?)처럼 입고 지내는 걸 보면 겨울이 곧 오긴 할 모양입니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하진 않지만 시드니에서의 생활이 20년차에 접어들면서 제 몸도 이곳 날씨에 완전히 적응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든 탓도 살짝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는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없이 1년 내내 더웠고 명색이 겨울이랍시고 두터운 옷에 부츠를 챙기는 이곳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거듭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제 입에서도 자연스레 ‘춥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좋은 것도 한 가지 있습니다. 2주에 한번씩 깎아대던 잔디를 겨울 동안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로 버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이래저래 세 시간은 매달려야 하는 노동 아닌 노동… 깎아 놓으면 깨끗하고 예쁘고 좋긴 하지만 이 일도 점점 버거워짐을 느낍니다.
때아닌 상추… 아내의 정성 덕분에 요즘 우리 집은 각양각색의 상추로 식탁이 푸짐합니다. 너무 많아서 가까운 사람들과 나눔도 하지만 여전히 넘쳐나는 중입니다. 가까운 지인에게서 얻은 치커리도 번식력이 매우 좋아 텃밭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예쁘게 달려 있는 방울토마토들이 빨갛게 익으면 그건 모두 우리 집 ‘먹신(神)’ 에밀리 차지가 될 겁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상황… 요즘은 낚시가 유일한 돌파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종목 중 하나인 갈치도 잡고는 싶은데 한꺼번에 10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몰린다는 얘기에 쉽게 용기를 못 내고 있습니다. 오징어 낚시나 연어 낚시는 파도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그러다 보니 요즘은 1년에 두세 번 가곤 했던 장어 낚시가 제일 만만합니다. 잡는 재미, 나누는 재미… 무엇보다도 사람이 북적대지 않고 우리 일행들끼리 오붓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최애의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처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의 전환이 시작됐습니다. 호주도 오늘 각료회의를 통해 전국 차원의 코로나19 셧다운 완화조치를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방팔방으로 꽉 막혀 숨통을 조이고 있는 조치들이 좀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로서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빠른 시일 내 코로나19와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게 최상의 그림일 터입니다.
“오늘,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친구들이 다녀갔네요. 150명이 훌쩍 넘었어요.” 지난 수요일 저녁 이스트우드한인상우회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입니다. 자신들도 코로나19 때문에 힘들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워홀러들을 위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음식 나눔을 하고 있는 그분들의 작은 정성은 우리가 같은 민족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 또한 직간접적인 코로나19 여파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지만 기본에 충실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분명 더 좋은 날들이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 동안은 얼떨결에(?) 에이든과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어느새 만 다섯 살이 넘어 61개월로 접어든 녀석은 ‘꽃미남 청년(?)’으로 훌쩍 자라 있습니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그리도 많은지 가끔 아니, 꽤 자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얘기까지 쉴새 없이 재잘재잘댑니다.
지 엄마가 데리러 오자 집에 안 간다며 대성통곡을 하는 녀석은 요즘 할머니한테 푹 빠져 무한애정공세 중입니다. 할아버지한테는 핫도그 ‘한 입’이 안 돼도 할머니한테는 ‘얼마든지’입니다. 특별히 녀석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살짝 억울한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꽤 오랫동안은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녀석이었는데 말입니다. 역시 사랑은 움직이는 건가 봅니다. 그럼에도 녀석만 보면 뭐든 챙겨주고 싶고 자꾸 껴안고 만지고(?) 싶어지는 건 제가 어쩔 수 없는 녀석의 ‘하부지’이기 때문일 겁니다. 에이든의 100만불짜리 눈웃음과 살인미소는 우리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씩씩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효과 좋은 최고의 백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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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