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한번의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미키를 아들과 함께 목욕시켰다. 몇달 전 예상외로 커져버린 수술 때 휘청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해 힘들어 했던 미키의 모습에 미리 걱정이 앞선다. 평소와는 다르게 어찌나 얌전하게 굴던지 욕조에 받아진 따뜻한 목욕물을 마치 사람처럼 오롯이 즐기는 듯했다.
비누 거품 속에서 백조 털 만큼이나 하얀 그 본연의 털이 드러났다. 아픈 곳을 조심스럽게 씻겨주고 타월로 닦아주려 하니 미키는 저 멀리 도망가버린다. 말도 통하지 않고 막무가내인 미키를 두 손 두 발 놓고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들의 뒷모양새가 비틀거린다. 머지 않은 장래에 그도 자식들을 낳아 키울 것인데 앞으로 육아에 따르는 고충을 어떻게 헤쳐 나갈런지….
“다음주 화요일 오전이 좋겠어요.” 수의사는 미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주었다. 수술을 받으러 아침 일찍 동물병원에 미키를 데리고 간 남편이 오래되지 않아 미키랑 같이 집에 돌아 왔을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의사 본인 애완견이라도 이렇게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두 번 세 번 물어봐도 이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했다니…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 셈이다. 미키의 종양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인간들이 중년을 넘어가면서 성인병이 하나 둘씩 생겨가는 것처럼.
아랫배 주위로 생기던 빨간 뾰루지들이 주위로 번져 나가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두어도 치료가 될까 말까 한데 그 동안의 몇 차례 수술 후 혀로 핥지 못하게 막아 놓은 목 칼라를 벗어 던지고 종일 핥아대니 상처 치유가 되기는커녕 악화되어 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피부에 좋다는 약들도 무용지물이었다. 커져가는 상처부위는 미키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누워있는 시간들이 움직이는 시간들보다 더 길어지고 걸음걸이도 날이 갈수록 느려져만 갔다.
눈물범벅이 된 나에게 남편이 미키의 상태를 조목조목 설명해주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가슴으로는 아직도 와 닿지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마치 내가 죄인인 것처럼 미키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고 될 수 있는 대로 미키를 멀리했다.
마치 우리가 미키를 잠시 떠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려 버린 것이 아닐까? 애완견과 작별을 해보았던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듣고서야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나이든 애완견들 중에도 여러 가지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상태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미키는 그래도 잘 살고 가는 거라고 동생이 위로해주었다.
잦은 수술로 이제는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와 함께 매일 동네 산책을 따라 나서길 좋아한다. 평소보다 절반도 되지 않는 거리를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헥헥거리며 걸어도 산책은 미키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된 후엔 말 대신 손을 흔들면 미키는 꼬리로 인사한다. 내가 치는 박수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름대로 조금 다른 방식의 대화법을 터득해갔다. 내가 피곤한 날에 조금 뒤쳐지기라도 하면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걸어가면서 내가 잘 따라오는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제 미키와의 마지막 이별을 준비해야만 한다. 14년 전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생을 접어야 할 시간이 그에게 결국 와버리고야 말았다. “미키도 그 동안 언니 집에서 나름 행복하게 산 거야. 소고기도 사다 주고, 맛있는 것 많이 먹여 주고, 많이 쓰다듬고 예뻐해 줘.”
동생 말처럼 미키를 위한 마지막 만찬을 위해 오늘도 난 마트로 향한다. 매일 같이 걸었던 산책길도 소중했고, 좋은 데로 가라고 마지막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속삭여주었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길어진 것은 다행이었지만 배에 두드러진 종양을 혀로 핥아내는 모습은 여전했다. 내게 인생의 교훈들을 가르쳐준 충실한 애완견 미키. 나의 이기심으로 조금이라도 더 미키와 같이 보낼 수 있게 일주일을 연장했던 사실이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밀려온다.
마지막으로 미키에게 살점이 두툼하게 달린 고깃덩어리를 주었다. 배가 부른지 아니면 식욕이 없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마당 구석지에 파묻을 곳을 찾으러 고기를 입에 문 채 어슬렁거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참 서글프고 씁쓸했다.
신이 인간을 내려다 보면서 혹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내일이면 이생을 떠난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미키의 이런 행동은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바로 가까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이기에. 그들이 매일같이 연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헛된 미련과 욕심들… 마당에서 망설이며 배회하는 미키의 뒷모습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내려 끌고 가는 무거운 수레처럼 겹쳐 보인다.
글 / 송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