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또 없나요?

가족들 앞에서 그의 유언장 낭독이 시작됐습니다. “손녀 일링에게 대학졸업 시까지 학비 1만불을 준다. 내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봐주길 바란다.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1971년 3월, 그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은 그의 유언장에 집중됐습니다. 당시 그가 기업활동을 하며 번 재산은 최소 50억원, 현재가치로 1070억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손녀의 대학 학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익재단에 기부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언장이 낭독될 때 우리가족 중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사실 저는 그전까지 늘 들어왔던 말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넌 아무것도 받지 않을 거야’ 였어요. 그래서 대학 학비로 1만불을 받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무것도 안 받는 게 우리가족 스타일이었으니까요. 우리가족에게 내려오는 한 가지 가르침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손녀 일링 씨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오는 연 매출 1조 8000억원의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회장은 말 그대로 ‘세상에 다시 없을 사람’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단 한 차례의 아주 작은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음은 물론, 남들이 모두 당연시 하는 세습경영을 배척했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좋은 기업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21일 방송된 한국 SBS TV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Only One-요원 A의 비밀’을 통해 그에 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열네 살에 미 군사학교에 입학, 3년간 미 육군사관학교와 똑같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미국에 있는 한인청년들을 모아 항일민병대를 조직, 독립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던 1945년 5월, 그는 미국이 일본본토를 공격하기 전 한반도 비밀침투를 통해 한반도 내 일본군을 무력화시키는 작전을 수행하는 미국 OSS (CIA의 전신) 요원 19명에 들었습니다. 철저하고도 완벽한 준비를 마친 이 작전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정부의 항복으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당시 50세의 나이로 이 작전에 솔선수범 뛰어들었던 그의 기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정부 수립 후에도 7년여 동안 그는 고국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제안한 초대 상공부장관 자리를 거절해 ‘미운 털’이 박힌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정치자금 헌납을 거부해 갖은 고초를 겪었고 이 같은 일은 박정희 정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괘씸죄’가 발동돼 특별사찰반 24명이 한달 동안 유한양행 장부를 그야말로 탈탈 털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판매 중인 약품 전체를 과학기술처로 보내 함량 및 제품 조사까지 실시했지만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늘 ‘회사의 주인은 개인이 아니다. 그 회사를 키워준 사회이다’라고 강조해오던 유일한 회장은 오히려 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유 회장도 백발의 일흔 노인이 됐고 후계문제가 거론되면서 임원들의 의견에 따라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아들 일선 씨를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3년 후인 1969년 10월 30일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3년간 부사장으로 일한 아들대신 전무에게 사장직을 넘겼습니다. 이른바 전문경영인 제도를 선택한 건데 그는 한번에 3년, 최대 한번만 연임할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의 임기도 제한했습니다. 본인 사망 후에도 회사가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유일한 회장은 아들뿐만 아니라 회사 내 몇 안 되는 친인척들도 전부 해고했습니다. “조직 속에 우리 일가친척이 있으면 파벌이 형성되고 회사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내가 죽은 다음에 우리가족 중 우수한 사람이 있어 채용하는 건 아무 상관 없다.” 정치판을 비롯해 각계에서 불법과 반칙이 횡행하는 요즘 세상에 유일한 회장 같은 사람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허황된 바람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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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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