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 한국에 있을 때 저에게 붙여진 별명입니다. 한겨울, 매서운 칼 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내복이나 외투는커녕 청바지에 셔츠 하나만 걸치고 온 사방을 누비고 다니는 건 물론,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에도 지친 모습을 1도 보이지 않았던 저를 향해 주변사람들은 그렇게 혀를 내둘렀습니다.
밤을 꼴딱 새워 술을 마시고도 샤워만 하고는 곧바로 출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에 몰두하던 저의 모습은 제가 생각해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던 듯싶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저의 이상현상(?)은 시드니에 오기 전 40대 중반까지도 끄떡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언제부터인가 저도 슬그머니 몸에 아부를 하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좋아하는 술도 조심하고 한국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시드니의 겨울 날씨에도 ‘춥다’ 소리를 연발하는가 하면 수면잠옷을 입고 지내며 독감 예방주사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선생님들 하고도 제법 친하게(?) 지내게 됐습니다. 물론, 그 옛날 저는 한국에서도 닥터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성형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안과, 내과, 치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신경정신과… 거의 모든 전문의들 그리고 한의사들과 빈번한 만남을 갖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제가 아닌 독자들의 건강을 위해, 취재원으로서 그분들을 대하며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전문의들을 통해 정확하고 다양한 건강정보들을 제공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저의 업무 중 하나였던 겁니다.
그러던 것이 10년쯤 전부터는 저의 건강을 위해 의사선생님들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GP선생님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가끔씩은 스페셜닥터들을 만나는 영광(?)을 가지기도 합니다.
“아~ 해보세요. 좀더 크게 벌려보시구요. 한번 씹어보세요. 네, 이제 다물어주세요….” 최근 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치과 스페셜닥터의 지시(?)에 저는 꼼짝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합니다. 돌도 씹어(?)먹을 만큼 튼튼한 이를 가진 저였음에도 언제부터인가 이에 한두 개씩 황금빛 크라운이 씌워지더니 이제는 잇몸관리 때문에 스페셜닥터를 만나는 겁니다.
의사선생님들에게는 죄송스런 이야기이지만 가급적 그분들과는 친하게 안 지내는 게 좋습니다. 그분들의 특별한(?) 도움 없이 건강하게 살면서 9988234를 달성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들면서 챙겨 먹는 약이 너나 없이 한두 가지씩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건강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게도 분명 똥배(?)도 안 나오고 머리숱도 엄청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제 모습은 참 많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먹는 것’입니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은 되도록 피해야 하지만 공교롭게도 맛있는 음식들은 거의 대부분 그 회피(?) 리스트에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 불치병 판정을 받고 산속으로 들어가 음식조절을 하며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그만큼 먹는 것과 자연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산속에 들어가 살지는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산과 함께 하고 있는 건 참 고맙고 다행스런 일입니다. 우리 산행팀 선배들, 70을 바라보는 혹은 70을 훌쩍 넘은 분들이 마치 특수부대 요원들처럼 펄펄 날아다니는 걸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9년 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건강하고 멋짐이 흘러 넘쳤던 이웃집 호주인 노부부가 최근 들어 다리도 가늘어지고 여기저기 아픈 모습을 보이는 걸 접하면서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되짚게 되는 요즘입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모두가 아무 탈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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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