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피의자신문조서에 지장을 찍고 대기실로 들어와 길다란 나무의자에 누웠다. 두들겨 맞은 온몸이 쑤셨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대로 한참을 잤다.

저녁 무렵에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난방장치가 되어있지 않은 유치장은 엄청 추웠고 괴괴했다. 간간이 어둡고 긴 한숨 소리만 정적을 흔들었다.

아침이면 유치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두워지면 유치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치장사람들은 하루가 지나자 말을 트고 이런저런 감옥살이정보를 나눴다. 나의 죄명 특수강도는 2명 이상이 작당해 저지르면 특수가 붙는다고 했다.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부은 내 얼굴을 보면서 말을 건넸다. “좆나게 맞았구먼… 여기서 며칠 썩으면 가라앉을 거야. 이 새끼들이 유치장에 열흘씩 가둬 두는 게 다 이유가 있다고. 좆나게 패도 열흘쯤 되면 가라앉으니까 팼다는 증거가 없어지지… 씨발놈들!”

검찰로 송치된 첫날은 담당검사를 대면하는 날이었다. 검찰청직원이 내 두 손목을 얇은 밧줄로 묶었다. 앞사람들 손목을 강하게 묶는 것을 본 나는 두 주먹에 잔뜩 힘을 주면서 손목을 내밀었다. 담당자가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소리질렀다. “힘 빼, 이 새끼야!”

밧줄로 손목을 강하게 묶이고 허리를 돌려 묶인 채 담당검사실로 끌려갔다. 담당검사는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서기가 취조를 했다. 취조가 아니라 경찰서에서 작성된 조서를 확인하는 거였다.

나는 강하게 “강도가 아니다. 여자들을 여관으로 끌고 가려는 남자들과 싸웠을 뿐이다”라고 했다. 서기가 차갑게 웃었다. “왜 사람을 패는 거야? 정의의 사나이냐?” 나는 묶은 밧줄이 팔뚝을 지나 어깨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견디며 “여자들이 도와달라고 해서 나선 거다”라고 했지만 서기는 “너희들은 사람을 패고 손목시계라는 물건을 뺏는 행위를 했다. 그게 강도다”라고 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뺏은 것이 아니고 친구가 싸우다가 주웠다”고 했다. 서기는 대꾸하지 않았다.

꽁꽁 묶인 손목의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온몸을 파고들었다. 서기에게 묶음을 조금만 늦춰달라고 애걸했지만 서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고통은 신문하는 사람이 이해될 때까지 끝까지 굽히지 않고 사실을 주장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주저앉게 했다. 손목을 꽁꽁 묶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모든걸 포기하게 만드는 눈에 뜨이지 않는 잔인하고 비열하고 교활한 고문이었다.

검찰청에서 서대문교도소로 이송된 것이 저녁이었다. 많은 죄인들이 붙잡혀 들어왔다. 사복을 모두 벗었다. 나체가 돼 몸뚱이에 새겨진 문신이 있는지 검사 당하고 팬티만 남기고 교도관 말대로 ‘세상의 옷’은 바구니에 넣었다.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죄수들이 ‘흥부 옷’이라고 하는 내가 받은 꼬질꼬질한 죄수복은 소매가 번질번질했다. 어느 죄수가 흐르는 콧물을 닦아서 그렇다고 했다.

죄수번호를 받고 넓은 마루바닥에 줄 맞춰 앉아 관식 저녁을 먹었다. 콩이 간간이 섞인 보리밥에 검정색단무지가 얹혀 있었다.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하고 밥그릇과 숟가락을 내려놓자 옆에 앉은 늙은 죄수가 내 밥까지 재빠르게 먹어 치우더니 빈 밥그릇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니 밥그릇이랑 숟가락은 니가 챙겨야 해.”

배정된 감방으로 향하는 철문이 열렸다. 맹렬한 추위에 온몸을 떨었다. 감방 앞에서 교도관이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한 손엔 밥그릇을 다른 한 손엔 숟가락을 들고 서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흐느낌이 되어 새어 나왔다. 혼자 서서 울었다. 그랬다. 두려움이 슬펐다. 슬픔이 두려움이었다.

감방구석에는 재래식화장실이 있었다. 감방문 옆 벽에는 교도관이 감시하는 감시통이 뚫려 있었고 문 기둥에는 패통 구멍이 있었다. 패통은 죄수들이 볼일이 있어서 교도관을 부를 때 사용하는 장치다. 문 아래로는 음식이 들어오는 식구통이 있었고 위로는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에는 죄수들이 들고 온 밥그릇과 숟가락이 포개져 있었다. 나의 잠자리는 화장실 앞이었다. 냄새보다 추위가 더 힘들었다.

내가 만난 죄수들은 거의가 가난했고 거칠었다. 그들은 인정에 굶주려 있었다. 그들은 누구도 믿지 않는 불신 덩어리였다. 입만 열면 쌍소리가 시작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은 불공평하고, 힘센 놈들이 맘대로 흔들고 조지는 좆같은 곳”이라고 했다. 자신이 붙잡혀 들어온 것은 재수가 없었고, 빽이 없었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천대받고 멸시당하는 건 돈이 없기 때문이며 “윗대가리 놈들은 모두 그냥 씨발 좆같은 새끼들”이라고 했다. 내가 있던 감방 벽에는 누군가가 큼지막하게 긁어 놓은 글이 있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有錢無罪 無錢有罪)!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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