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

흔적조차 없다. 무성한 풀로 뒤덮여 울타리도 사라졌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훑고 스쳐간다. 어렸을 적 볼 빨간 아이가 헉헉거리며 오르던 그 길은 어디로 갔을까.

 

코 흘리는 동생 손을 잡고 오빠들 뒤꽁무니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내 발걸음에 못 맞추는 동생 손을 마구 잡아당겼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숨이 목구멍에 차올라 토할 것 같았다. 멈출수가 없었다. 쾍쾍거리는 동생 손을 더 꽉 움켜잡고 눈은 점점 멀어져 가는 큰오빠 등을 새겨 놓았다. 드디어 문이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스듬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과수원을 처음 보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엄청 무서웠다. 당장 산속에서 무서운 짐승들이 입을 벌리고 달려올 것만 같았다. 유난히 뱀을 무서워하는 나는 풀숲을 걷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때야 동생의 손을 놓는다. 나보다 여덟 살 어린 동생이 어느 겨울날 할머니 집에 갔다 오는 길에 넘어져 다친 이마에 큰 상처가 있다. 그 후로 나는 동생 손을 절대 놓을 수가 없었다.

 

과수원 정 중앙에는 원두막이 있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푹신한 매트를 밟고 서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은 동화책 속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띄엄띄엄 지나가는 자동차가 장난감처럼 보였다. 어쩌다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림책 속 주인공 같았다. 해가 질 무렵 고즈넉한 마을 풍경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 풍경을 보기 위해 거친 길을 달려가곤 했다. 숨을 고르고 누워서 눈을 감았다. 빼곡한 나뭇잎들의 부딪침과 매미들의 울부짖음은 천둥소리로 다가왔다. 여름 햇살을 머금은 과일 향이 풀 냄새와 섞여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보다 책을 더 좋아했다던 큰오빠. 이런 곳에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며 책 한 권씩 손에 쥐여줬다. 오빠 말을 잘 들어야 다음에 또 올 수 있다는 암묵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아직 글씨를 모르는 동생은 동화책을 거꾸로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한참 먼저 올라온 작은 오빠가 보이지 않았다. 손재주가 많고 부지런해 엄마 일손을 잘 도와주는 작은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원두막을 중심으로 복숭아는 하얀 봉투 안에서 익어가는 중이었다. 유난히 크고 뽀얀 복숭아가 맛있기로 소문난 덕에 대부분 도매로 금방 팔렸다. 과수원 가장자리에 있는 살구나무에는 진노랑 빛 살구가, 그 옆으로 포도가 조금씩 색을 바꾸며 햇살을 먹고 있었다. 그토록 혹독한 겨울을 참아내고 봄 여름 햇살과 비를 먹고 열매를 맺어가는 과일이 마냥 신기했다. 원두막 바로 아래에는 봄이 끝자락임을 증명하듯 작은 딸기가 듬성듬성 보이고 다음 칸에는 수박과 참외가 초록 이파리 속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엄마는 새벽마다 과수원에 다녀왔다. 철마다 열리는 과일을 따와서 학교 가기 전에 먹고 가라며 바구니에 가득 담아 놓곤 했다. 딸기를 좋아하는 나는 빨갛게 익은 딸기를 내 손으로 따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잘못하면 과일이 상처 난다며 엄마는 허락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꼼꼼하고 완벽에 가깝도록 일하는 엄마는 과수원에 가는 것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그 넓은 과수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 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 평생 펜을 잡은 손이라 엄마 손보다 훨씬 곱다. 집에 못 박는 일도 엄마 몫이었다. 어쩌다 도와준다고 못을 박던 아버지가 실수로 손을 찍어 오히려 더 힘들게 해서 다시는 하지 말라고 했단다. 나뭇가지를 치고 접붙이기할 때는 일하는 사람들을 고용했다. 작은오빠는 그때부터 엄마 곁에서 몸과 마음으로 엄마를 지켜주었다.

 

큰오빠 목소리가 메가폰 소리로 들렸다. 내려가도 된다고 했다. 동생은 어느새 사라졌다. 부랴부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동생 이름을 부르며 나무들 사이로 가다 보니 저 멀리 작은오빠와 엄마 뒷모습이 보였다. 땀에 흠뻑 젖은 등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작고 여린 엄마의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엄마는 늘 학생은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아무것도 못 하게 했다. 그 말 때문인지 원두막은 책을 읽고 숙제를 하는 곳으로 알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공부하고 엄마는 그렇게 일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세월은 기억의 흔적마저 서서히 지워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두막’이란 단어가 시리게 다가왔다. 호주에 살면서 한 번도 기억하지 않았던 그 원두막이 어느 날 몹시도 그리웠다. 섣불리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던 단어. 아버지가 남기고 돌아가셨을 때 우리 형제들 입을 모아 했던 말, ‘과수원은 무조건 작은 오빠 주자’였다. 엄마와 함께 써 내려갔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쉽사리 지울 수 없는 곳. 삼 년 전 오빠들마저 아버지 곁으로 갔음에도 여전히 품고 있는 과수원. 비록 원두막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제는 엄마도 그곳으로 갔으니 그만 다 보내줘야 할 것만 같다.

 

 

최지나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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