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같은 모임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만남의 장소인 에핑 역에서 함께 할 회원님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모두 함께 탄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건물의 안내표지를 보며 이곳이 낯설지 않은 장소임을 알았을 때에도….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는 나에게 지인이 추천을 해준 모임에 참석차 왔던 장소이다. 그럼에도 왜 그때의 모임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저 여기에 와본 적이 있어요. 이곳에서 다른 글짓기 모임을 하고 있어서 한번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천진한 말을 했던 것이다. “우리 외에는 이곳에서 하는 다른 글짓기 모임은 없는데…” 그제서야 ‘4년 전 방문한 같은 모임에 다시 돌아왔구나’ 받아들였다. 한편, 다시금 자각하게 된 어처구니 없는 나의 아둔함에 피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예전의 모임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 중 하나가 그 방에 처음 들어선 순간이다. 두 면에 나 있는 넓은 창들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초록 잎들의 활력과 싱그러움을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첫인상은 짧게 숨을 멈출 정도로 강했었기에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오늘의 그 방은 나의 기억을 배반한 듯 두꺼운 커튼너머 짙은 회색의 구름과 동화된 듯 우울해 보였다. 4년 전과는 많이도 다르게 넓은 방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회원이 전부였다. 한국을 방문 중인 몇 명의 회원들과 온라인으로 인사를 나누며 기억나는 얼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글짓기 모임에 초대해주신 회원님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분의 시 낭독은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
함께 한 회원님들은 조촐한 모임 인원에 내가 실망하지는 않았을지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보였다. 솔직히 오늘의 참석인원이 우리가 전부라는 것을 안 처음 몇 분 동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준비해온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글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할 수 없었다.
거칠어 보이는 글이 더해지는 첨언에 다듬어지는 것을 보며 미미하지만 희열이 느껴지고 흐뭇하기까지 했다. 첨언을 부탁 받았을 때는 준비해온 글이 전문작가가 쓴 글에 못 미치는 것은 알지만 더 나은 글이 되도록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다른 분의 첨언이 곁들여진 글은 전보다 흐름이 매끄럽고, 전달되는 메시지가 더욱 명료해졌다. 그 과정을 보며 글은 읽기도 해야 하지만 또한 글을 보아야 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보기도 했다. 다른 이의 글을 읽고 비평하는 일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모임 후에 함께 한 오랜만에 먹은 한식도 즐거웠지만 오늘 모임에서 발견한 희망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라는 격려는 4년 전 큰 산 같았던 글쓰기가 언덕만큼 작아져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나도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일기를 쓰는 것처럼 일상의 일들을 글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보라는 따뜻한 격려가 의외로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글쓰기의 장벽을 많이 낮아지게 한 것이다.
두 분에게 편한 마음으로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듯이 글을 쓴다면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지 않을까 하는, 근거는 약하지만 기분은 충분히 좋았다. 앞으로 글쓰기와 그로 인한 모임에서의 활동들이 재미있을 것 같고 어쩌면 글쓰기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흥미로운 장난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해본다.
글 / Daisy (글벗세움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