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종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인간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오래 살았음을 축하했던 60 환갑잔치가 평범한 생일날처럼 변했다.

60년 세월을 오래 산 세월이라며 감사하다고 덩실덩실 어깨 춤을 추던 풍경이 흔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90 넘어도 아직 팔팔 하다면서 삶에 대한 의지가 당연한 흐름이 되었다.

5년 전이다. 열흘 넘게 계속 혈변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뭔가 잠시 이상이 있는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계속되는 같은 증상이 신경 쓰였다. 인터넷에서 ‘대장암’을 두들겼다. 뭐라고 설명돼 있었지만 내가 판단하기엔 명확하지 않았다.

별일 아닐 거라고 마음을 달래면서도 평소와는 다른 몸뚱이의 변화가 불안했다. 몹쓸 병에 걸린 것인가. 설령 그럴지라도 그건 하늘의 뜻이니 내가 어쩔 거냐며 마음을 다독였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체 씻겨지지 않았다.

가정의가 병원 검사를 권유했다. 그럴리가 없어, 신경 쓸 것 없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슬금슬금 불안은 쌓여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살려고 꿈틀거리고, 쉬이 죽지 않으려고 움츠리는 생명체다.

병원에서 파우치가 날아왔다. (명품 디올백은 파우치가 아님) 대장암검사를 위한 절차가 기록된 설명서와 가검물을 채취해 병원으로 보내달라는 용기와 대장을 말끔하게 비워줄 약품이 들어있었다. 병원의 설명대로 실행해 반송 파우치를 보냈다. 병원의 답신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으로 우울했다.

며칠 후, 검사결과를 통보 받았다.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가정의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정의 선에서 ‘이상 없다’는 검사결과로 끝이었는데 이번에는 병원 담당의사의 검사결과 ‘대장내시경’이 필요하다는 소견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병원을 찾아 몸뚱이에 칼을 대며 불안에 떠는 날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것이 나는 참 여러 번 병원을 들락거렸다. 몸뚱이에 칼을 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릎, 턱, 눈, 배, 그러더니 이번에는 큰창자인가. 몸뚱이에 부적이라도 붙이고 다녀야 하는가?

병원에 가는 날 아들이 동행했다. 여느 아버지나 그렇겠지만, 비 내리면 허리 굽혀 우산을 받쳐줘야 할 자식이며,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친구이며, 힘없어 휘청거릴 때 붙잡을 기둥인 아들이 혼자 검사 받으러 가겠다는 나를 따라가겠다고 앞장서 나섰다.

나는 혹시 잘못된 검사결과가 나오더라도 혼자만 알고 싶어서 통역을 신청했기에 아들의 동행을 거부했다. 한데 아들이 부득부득 고집을 부렸다. 대신 통역은 통역하는 사람에게 맡기기로 약속했다.

마음 속으로 아들 앞에서 걱정스런 말이나 우울한 표정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차 속에서 평소처럼 나누는 말들이 줄어들었다. 산다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며 설령 ‘재수없이’ 검사결과가 잘못돼도 담담하자고 자신을 달랬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실로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통역사는 도착하지 않았다. 의사가 나의 상황에 대해 확인했다. 의사의 표정은 나의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긴장감도 없었고 평온했다. 질문하는 말투도 잔잔했다. 아들이 통역을 했다. 간호사인 듯한 직원이 탈의실로 안내하면서 더 이상 아들의 동행을 막았다. 아들은 대기실로 나갔다. 갑자기 허전했다. 혼자라는 쓸쓸함이 엄습했다.

옷을 모두 벗고 나체가 된 몸뚱이에 엉덩이 쪽이 터진 요상한 긴 가운을 입고 탈의실을 나오자 그제서야 통역사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병원에서 지정한 통역사였다.

눈에 익숙한 검은 색 비닐이 깔린 수술대 위로 올라가 누었다. 흰 가운을 걸친 담당의사가 똑바로 눕지 말고 옆으로 누우라고 했다. 전신마취가 아니고 부분 마취를 한다고 통역이 나에게 말해줬다.

옆으로 눕자 눈앞에 커다란 TV화면이 보였다. 의사가 전신마취가 아니고 부분마취이니 의식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는 저 TV화면으로 너의 대장검사를 볼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내 큰창자 속을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항문으로 검사기를 넣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TV화면에 큰창자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는 막대처럼 생긴 검사기가 창자 속을 조심조심 훑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텅 비워버린 창자 속은 잔주름 진 옅은 핑크색이었다. 너무 깨끗하고 예뻤다. 모든 걸 그렇게 텅 비우고 살수 있다면 얼마나 예쁠까.

검사기가 창자 속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자 창자 속에 돌기 같은 것들이 보였다. 검사기는 돌기를 맴돌며 가위로 잘라내듯 자르는 것 같았지만 느낌은 없었다. 그 돌기가 찜찜했다. 이젠 잘라낼 돌기가 더 이상 없는지 검사기의 움직임이 멈췄다. 잠시 후, 의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혼자 말했다. No Cancer! 나는 확실하게 들었다.

의사가 내 큰창자 속에서 32개의 용종이 발견되었고 이를 말끔히 제거했다고 했다. 용종은 일종의 종기이며 암은 아니라고 했다. 하늘님에게 감사했다.

나는 몸뚱이 여러 곳에 칼을 댔는데도 지금도 쌩쌩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적 같은 거 몸뚱이에 붙이지 않아도 오래 살라는 팔자인가보다. 오래오래 사는 것이 정말 축복인지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어쨌든 기분 좋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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