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설명에 따르면, 용돈은 노동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임금과는 다르다. 용돈은 개인이 사사로운 일에 사용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
나의 예를 들자면 소주 사 마시고, 짜장면 사먹고, 닭다리 튀김 사먹고, 테니스 볼 사고, 팝에서 생맥주 한잔 마시고, 이발하고, 팬티 사고, 자동차 끌고 다니고 등등 살아가면서 필요한 온갖 종류의 잡다하지만 무겁지 않은 가벼운 돈이다.
영어로는 Pocket Money라 한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푼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푼돈에 일희일비한다.
‘어른이’들은 용돈이 생기면 사람들 앞에서 목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도 여유롭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말투도 자신감이 넘쳐난다. 반대로 주머니 속이 비어있는 어른이들은 사람관계에서도 매사 수동적이고 움츠려 든다.
용돈이 넉넉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른이 뿐만 아니라 황혼을 바라보는 늙은이도 몇 푼의 용돈이 생기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씀씀이도 마음도 후해진다. 가난한 늙은이 주머니 속에 술 한 병 값 용돈이라도 들어있어 봐라. 온종일 즐겁고 발걸음도 날듯이 가볍다.
나는 성장해가면서 용돈이라는 의미를 모르고 살았다. 자라면서 용돈이라며 받아본 적이 없다. 누가 나에게 용돈이라면서 손에 쥐어줄 환경이 아니었다. 철부지 어릴 때부터 먹고 입는 것들에 쪼들린 삶이었기에 나에게 용돈이라는 말은 색다르고 낯설기만 했다. 용돈을 받는다는 것도, 용돈을 준다는 것도 나에게는 생경한 풍경이었다.
주는 것이 서툴면 받는 것도 서툴고, 받는 것이 서툴면 주는 것도 서툴다. 나는 용돈을 주는 것이 어색했다. 줘도 좀스러웠고 인색했다.
아들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군것질 한 두 번이면 바닥나는 몇 푼의 용돈을 주면서 금전출납부를 작성하게 했다. 어렵게 살아야 했던 나의 돈에 대한 관념 내지 개념 때문이었다는 변명을 해본다. 그렇지만 생각할수록 아들 딸에게 미안하다.
고국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을 데리고 이민 와서 영어를 배우라고 동네 College에 입학시켰다. 학교가 동네일 뿐만 아니라 학생이므로 용돈은 일주일에 20불 (당시 환율로 1만 1000원 정도)이면 충분하리라 단정하고 20불씩줬다.
성인이 된 딸은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고 싶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먹고 싶은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미운 애비였다. 한참 후에 알았지만 딸은 버티다 못해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3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그때 딸의 용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힘들고 괴롭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지워지지 않고 씻겨지지 않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다.
몇 년 전이다. 나보다 더 많이 늙은 둘째 형님이 늙은 나에게 뜬금없이 용돈이라며 보내줬다.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조금 여유가 생겨 이제 보낸다며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보태라고 했다.
둘째 형님은 나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다. 공부 가르쳐주고, 학자금 대주고, 대학을 포기한 나를 다그쳐 대학을 가게 해줬다. 직장을 잡지 못한 내가 ‘방황하고 싸움질만 할 것 같아서’ 서둘러 결혼도 시켜줬다. 내가 좌절할 때마다 붙들어 일으켜 세워준 분이다.
세월이 흘러갔고, 그렇게 형님도 나도 늙었다. 그런데도 형님은 여전히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80을 훌쩍 넘긴 형님이 80이 눈앞인 동생이 눈에 밟혀 용돈을 보낸 거다. 형님의 사랑인가 나의 설음인가.
형님은 잊을 만하니 또 용돈을 보내줬다. 나에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다 늙어 저승길이 가까운데 노잣돈이 아니고 용돈이라니. 형님은 용돈이라고 했지만 나에겐 용돈이 아니라 눈시울 적시는 아픔이었다.
형님에게서 용돈을 받았을 땐 놀라고 감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늙어서도 형님에게서 용돈을 받는다는 것이 염치없고 쓸쓸했다. 나는 형님에게 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받기만 했다. 송구했다. 그만 보내라고 사정했다.
형님이 보내준 용돈을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쓰고 싶은 곳이 있어도 견디면서 아꼈다. 감사하고 염치없어서만이 아니다. 신나게 써본 경험이 없어 제대로 쓸 줄도 몰랐다. 돈을 쓰는 것도 써본 놈이 잘 쓰는 것이다. 나는 단지 아까워서 쓸 수가 없었다. 그냥 움켜쥐고 있었다.
사람들 말처럼 떠날 날이 내일 모레인데, 떠나면 모두 그만인 것을, 움켜쥐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나도 모른다. 긴긴 세월 살아오면서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버린, 그 지긋지긋한 쓸 줄 모르고 움켜쥐는 타성이었다.
그렇게 움켜쥐었던 용돈을 늦었지만 딸에게 못다했던 용돈으로 주었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 아프게 쌓여있는 딸의 용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딸에게 나를 조금이나마 편케 해달라고 부탁했다.
엊그제 카톡으로 내 얼굴모습을 본 형님이 걱정을 했다. “나보다 더 폭삭 늙었구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먹고, 마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 마셔라. 술은 조금씩만 마시고, 살 좀 찌워라. 돈이 부족하면 용돈 좀 보내주마”고 했다. 그렇구나. 내 형님이 보내주는 용돈은 그냥 돈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이었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