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며 보는 한국 드라마?!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뻔한 결말인데도 저도 모르게 그 단계로 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매회 욕을(?) 빼놓지 않고 보게 됩니다.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악역 혹은 악녀가 최소 하나씩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게 시청률을 견인하는 인기작가의 능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어떨 때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질질 끄는 전개로 짜증을 내면서도 TV 앞을 못 떠나는 시청자들을 끌고 가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듯싶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드라마 작가 중에는 쌍욕을(?) 대놓고 유도하는, 그리고 그 때문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도 있으니 참 대단한 능력입니다.

처음부터 잔잔한 감동과 행복을 주기보다는 어떤 형태든 갈등과 반목, 질시를 거듭하다가 마무리 단계에 와서는 악당과 악녀들이 응징을 당하는 이른바 권선징악의 결말을 갖는 것 또한 한국 드라마들이 갖는 공통점입니다.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처음부터 열심히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봐도, 중간 이후에 끼어들어서 보기 시작해도, 그리고 띄엄띄엄 봐도 내용을 거의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친절하게도 가끔씩은 과거 회상장면을 통해 중요한 스토리들을 리마인드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저도 글 쓰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긴 하지만 드라마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종종 갖게 됩니다. 후배기자들 중에도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방송작가나 소설가가 된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큰돈을 벌어낸 반면 저는 맨날 돈도 안 되는 글만 열심히 쓰고 있다 보니 ‘이러려고 내가 글쟁이 됐나…’ 싶은 자괴감이 문득문득 들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아줌마 다됐어…’라는 제목의 글을 쓰긴 했지만 제가 아줌마 다 된 것 같은 변화 중 하나는 최근 몇 달 동안 한국 드라마에 완전몰입(?)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집과 사무실은 분리돼야 한다는 게 평소 저의 소신(?)이었지만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이제는 그게 완전히 버릇이 되고 또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게으르거나 늘어지지 않기 위해서 저는 오전 9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집 별채로 정상(?)출근을 합니다.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제 아내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 듯싶습니다. 제가 ‘삼식이’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마음 착한 아내는 찌질한 남편을 위해 매 끼니 메뉴를 고민합니다.

회사 일로 나가는 일 외에는 주로 집에 있다 보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가 코리아타운 근무일임에도 저는 세븐 데이로 수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컴퓨터 모니터를 째려보다가 가끔 뒷마당으로 나가 올려다 보는 하늘은 참 맑고 예쁩니다. 드물게는 본채로 올라가 청소기도 돌리고 세탁기가 깨끗하게 해낸 빨래를 아내와 함께 널고 걷기도 하며 아주 가끔씩은 설거지도 거들곤 합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아내와 나란히 앉아 드라마 삼매경에 빠집니다. 이른 저녁식사와 커피 한잔 후에는 연속으로 이어지는 일일 드라마 세 편을 채널을 옮겨가며 열심히 봅니다. 뻔한 스토리 전개인줄 알면서도 드라마에 몰입해 흥분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천성적으로 마음이 여린 아내는 슬픈 장면이 나오면 예외 없이 눈가가 촉촉해지곤 합니다.

한 공간에서 허구한날 함께 지내는 부부라는 관계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라도 성향이 다르면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기게 마련인데 우리는 다행이 둘 다 찌질하기도 하고 마음도 여려서 잘 맞춰 사는 것 같습니다. 특히 ‘바보’ 소리가 아깝지 않은 배려심 많은 아내 덕에 저는 더더욱 편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같이 두루두루 힘든 시기에 ‘못 벌면 아껴 써야 한다’며 아내는 이런저런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 착한 아내를 위해 앞으로는 커피도 더 자주 타고 설거지 횟수도 좀더 늘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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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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