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쯤 아내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 보낸 그분의 아내를 향한 ‘빨간 장미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방안에 놓여 있는 아내의 사진을 보며 “여보, 잘 자요” 하면서 한 송이 그리고 “여보, 잘 잤어요?” 아침인사를 하면서 또 한 송이…. 해마다 아내생일에 나이 숫자만큼의 빨간 장미를 선물해오다가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에 빨간 장미 82송이를 선물하고 싶어했지만, 주변의 만류(?)에 이은 하얀색 장미 제안을 ‘연분홍과 흰색 장미’ 82송이로 접점을 만들었던 그분입니다.
저와는 열여섯 살 차이가 나는 그분은 늘 ‘큰형이 막내 동생 챙겨주듯’ 저를 살뜰히 대해줍니다. 지난 6월, 감기로 시작된 저의 비실댐이 계속되자 당신의 심신도 편치 않은 상태였을 텐데도 사슴보약을 한 보따리 챙겨 들고 우리 집까지 단숨에 달려오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겨울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 점심 무렵, 우리는 벨모어의 한 일식집에서 반주를 곁들여가며 두 시간 반이 넘는 동안을 함께 했습니다.
빨간색 체크무늬 외투에 주황색 체크무늬 목도리 그리고 검정 중절모 차림의 그분은 변함없이 단아하고 깨끗한 모습이었습니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이 세상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다는데 “건강은 괜찮으시지요?”라는 저의 질문에 “몸은 그래도 괜찮은데 늘 마음이 헛헛해요”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워낙 달변가이기도 했지만 그날따라 그분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왠지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도, 편하게 전화할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그분은 가끔 지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함께 먹고 놀고 떠들다가 돌아가고 나면 적적함이 엄습해온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당신 집에서 당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허심탄회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그분은 “김 사장님, 이래봬도 나, 요리 잘 해요”하며 웃었습니다.
헤어지는 시간… 그분이 무심하게 비닐봉투 두 개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두부예요. 하나는 명란젓이고….” 제가 벨모어 갈 때마다 그곳 유명 두부집에서 두부 사오는 걸 기억했다가 그날은 당신이 미리 준비를 한 겁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명란젓은 또 어디서 산 건지…. 사실 그날도 제가 고마운 마음에 점심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만남을 가진 건데 그분은 아예 “오늘 점심은 내가 사는 거니까 서로 내겠다고 싸우지 말자구요. 김 사장님은 나중에 내가 이스트우드 가면 그때 맛있는 것 사주고… 아니다. 만날 때마다 밥값은 내가 낼 테니 얼굴 자주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네 가게 바깥천정에 제비집이 지어진 것을 보여주며 “다른 데는 없는데 유독 우리가게에만 그것도 네 개씩이나 지어놓은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제비왕자인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인 후 크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습니다. 원래 거구는 아니었지만 남달리 탄탄한 몸을 지녔던 그분은 그새 조금은 더 작아진 것 같았고 그분이 의지하고 있는 지팡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 게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자식들은 물론, 가족, 친척, 지인들도 중요하지만 부부가 가장 소중해요. 두 분도 건강 잘 챙기며 오래오래 함께 해요”라며 그분은 아내와 제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그날 그분은 참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가슴에 와 닿은 한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마누라 죽고 나니까 외롭진 않은데 슬퍼….” 채 말끝을 잊지 못하는 그분의 눈에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했습니다.
반년 전,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내는 그분을 보면서 김광석 가수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그날은 노사연 가수의 ‘바램’이 참 잘 어울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계속 귓가를 맴도는 그분의 “외롭진 않은데 슬퍼…”라는 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막내 동생’이 지금부터라도 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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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김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