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을 견디던 거뭇한 염소들은
저녁 쪽으로 난 길 같다
어둑해진 생각에 궁리를 맡기고 돌아선다
저녁의 문을 열어 놓으면 염소들은
온몸에 검정을 묻혀 들어온다
덜 익은 어둠 어디쯤에서
하루 종일 뜯어먹은 초록들과
비탈진 울음들이 새까맣게 뱃속에서 물들고 있다
어느 땐 염소들의 뒤를 따라오는
산그늘을 만날 때도 있다
산그늘을 돌돌 말다 보면 큰 덩어리의 어둠이
짐승처럼 꼬리를 감출 때가 있다
그러니까 모든 저녁 쪽으로
난 길들은 염소들이 우물거리고 있다
집과 저녁에 밥을 두고 있는 사람을 닮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산비탈을 뜯어먹는다
저녁들도 다 집이 있다
불빛엔 방 한 칸이 붙어 있고
귀가하지 못한 불빛은 난간에 겨우 안착하고
이부자리는 숲의 끝자락같이 사그락거린다
염소들은 오랜 고민 끝에
가축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이나 염소나 저녁으로 가는 길은
밥 뜸 들이는 냄새를 통과해야 한다
글 / 황주현 (글벗세움문학회 인터넷회원·시인·시낭송가·2024년 경상일보,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