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어머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한없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멈추지를 않더라구요….” 얼마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님을 떠나 보내고 돌아온 절친이 전한 이야기입니다.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아흔 일곱까지 사시다 돌아가셨으니 남들은 ‘그래도 호상 (好喪: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식 입장은 또 다를 겁니다.

그 연세까지 큰 병 없이 사시다 돌아가셨으니 그도 어찌 보면 복이면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웰빙 (Well-being)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웰다잉 (Well-dying)이 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건강하게 잘 살다가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야말로 복 받은 일이 될 것입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는 경우를 보면 참 많이 안타까워집니다. 2010년, 마흔 한 살의 아까운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우리회사 회계사의 갑작스런 죽음은 지금도 저에게는 가장 가슴 아픈 죽음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왜 착하고 똑똑하고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은 일찍 죽는 걸까?’ 가족이나 다름 없었던 그의 죽음 앞에서 수도 없이 되뇌었던 이야기입니다. 참 희한하게도(?) 남에게 사기치고 못된 짓을 밥 먹듯 하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은 그야말로 지겹도록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참… 세상 공평하지 못하다는 한탄이 절로 나는 대목입니다.

지난주,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한인성당에 마련된 빈소에서 그 자매님은 평소 그랬던 것처럼 아주 선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긴 하겠지만 아직 예순 여섯밖에 안된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야 했던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고인을 향한 인사가 끝나고 아내가 고인의 큰딸을 안으며 위로를 건네자 왈칵 눈물을 쏟는 큰딸의 모습에서 저는 언제가 될지 모를 제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딸들끼리 먼저 친해져서 엄마 아빠들도 덩달아 가까워진 만큼 녀석들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날 밤, 고인과의 마지막 시간을 가지고 돌아온 아내와 저는 헛헛한 마음에 작은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평소 고인과는 그렇게 찐한(?)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친근감을 느끼며 지내오던 차였습니다. 몇 년 전, 몹쓸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가끔 마주치는 모습에서는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소주 세 병을 비워냈습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중략)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 정 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산울림의 ‘청춘’입니다. 42년 전 이 노래가 나왔을 때는 스물다섯 청년이었음에도 묘하게 공감되는 부분을 느꼈는데 최근 들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하나 둘 접하면서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우리의 푸르렀던 청춘도 한 발짝씩 멀어져 가고 있는 겁니다.

저는 ‘건강하고 즐겁게 열심히 살다 죽으면… 죽음 또한 축제’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실제로 저는 제 빈소에서는 슬픈 울음소리 대신 평소 제가 좋아하던 노래가 장르에 상관없이 흐르고 한 켠에서는 가족들과 즐겁게 지냈던 시간들을 담은 동영상이 계속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친구, 돈도 많이 못 벌고 찌질하긴 했지만 나쁜 짓 안하고 남들한테 잘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나름 성공한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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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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