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날?!

순 우리말 ‘어처구니’는 ‘맷돌 손잡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맷돌을 돌려야 하는데 손잡이 즉, 어처구니가 없어 맷돌을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 돼 황당하다’는 뜻이 됩니다. 아울러 요즘에는 이 말이 ‘뜻밖의 일을 겪어 당혹스럽다’는 의미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도 며칠 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서큘라키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마치고 막 돌아서는데 키가 저만큼이나 커 보이는 금발의 백인여자가 팔꿈치로 제 팔을 심하게 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무방비상태였던 저는 순간 휘청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왜 이러느냐?”고 묻자 그 여자는 “당신이 내 배를 만졌다”며 저를 쳐다봤습니다. “뭐라고?” 제가 인상을 쓰며 그 여자를 노려보자 그 여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얼른 자동주문기기 앞으로 가서 주문을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헐…”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황당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마음 같아서는 매장 내 CCTV라도 돌려보며 시시비비를 가려 보고 싶었지만 일행들도 있고 해서 그냥 꾹 눌러 참았습니다.

매장 내부가 많이 복잡한 상황에서 정말 누군가가 그 여자의 배를 만지고 지나갔는데 그 여자가 그걸 저로 오인했을 수도 있겠고 그게 아니면 말 그대로 ‘또라이’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거창하게 인종차별 뭐, 이런 것까지는 생각지 않으려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저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라는 푸념을 날리며 돌아섰지만 기분은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습니다. 그 여자가 어찌나 세게 팔꿈치로 가격했던지 어깨며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햄버거 세트를 받아 들고 와 일행들과 함께 먹으면서도 더러운 기분, 찝찝한 기분은 지워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애써 내색을 하지 않고 트레킹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조금 나아질만한 시점에 또 한번의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맨리에서 페리를 타고 서큘라키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답답한(?) 안쪽보다는 밖에 있는 걸 좋아합니다. 그날도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 앞쪽에서 한 남자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혹시… 멀미?”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남자는 금세 고개를 들고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낄낄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바다를 향해 뭔가를 뿜어댔습니다. 그 파편(?)들은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흩뿌려졌고 아내와 저도 고스란히 테러를 당했습니다. 더 이상의 봉변을 피해 얼른 반대쪽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또라이라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의 형편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지고 싸워봤자 피곤하기만 할 일… 이번에도 꾹 눌러 참았지만 짜증은 폭발 직전까지 차 올랐습니다.

페리가 서큘라키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우리 조금 앞쪽에 문제의 그 테러범(?) 일당이 연신 키득대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건설현장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은 세 남자의 손에는 맥주병이 들려 있었고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페리 안에서 술을 마시면 최대 400불까지의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문이 페리에 붙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고 그 같은 행패를 부리는 그들에게 봉변을 당하고도 따지거나 항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맨리 페리선착장 앞 벤치에서 술에 취했는지 웃통을 훌렁 까고 불룩 튀어나온 배를 흔들며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시비를 걸고 다니던 (다행이 우리 앞에서는 발을 구르고 괴성을 낼 뿐 골 때리는 짓은 안 했습니다) 이상한 중년남자까지… 그날은 세 번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따지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누가 때리면 그냥 한 대 맞고 말지’ 하는 생각을 가졌던 저로서는 그들과의 시시비비 또한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또라이, 양아치들 때문에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가 어처구니 없이 엉망진창이 돼버린 건 아무리 참으려 해도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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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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