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나들이

토요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밀슨포인트 역에서 내렸다. 한적한 커피숍을 찾아 역 주위를 둘러보았다. 결국 돌아 돌아 전에 들렸던 카페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역시 이곳은 홀로 앉아 커피를 음미하기에 알맞은 공간인 것 같다.

커피와 크로쌍을 주문했다. 주위에 담소를 나누며 브런치를 즐기는 커플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강아지가 얌전히 앉아 있다. 낯선 사람이 쳐다봐서인지 강아지도 말똥말똥 나를 쳐다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강아지와 눈 인사를 나눈다. 방학이 시작되어서인지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사람들이 많이 밖으로 나온 듯하다. 바람은 약간 쌀쌀한데 걷기에도 딱 좋은 날씨였다. 조금이라도 걷자는 심산으로 무작정 집을 나와 기차에 올랐었다.

‘자… 이제 걸어볼까?’ 하버브리지에 들어섰다. 브리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버는 넘실거리는 물살이 요동을 친다. 밑으로 배들이 지나가면 두 갈래의 물살이 뒤따라 달린다. 하얀 요트들이 푸른 바다 위에 백조처럼 유유히 떠 있다. 가슴을 펴 큰 숨을 들이켜며 허리를 펴고 힘있게 걸었다.

하버를 지나 써큘라키에 도착하여 왓슨스 베이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배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드니는 참으로 아름답다. 로즈베이를 지나 이곳, 왓슨스 베이에 내려 좌측으로 걸어 레이디 베이 비치 (Lady Bay Beach)를 지난다.

이곳은 누드비치다. 서늘한데도 누드로 수영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 두 명이 보란 듯이 앞의 bush(?)를 드러내고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곳을 지나 등대가 있는 사우스 헤드 (South Head)에 이르렀다. 바다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곳은 노스 헤드 (North Head)다. 남쪽 머리와 북쪽 머리 사이를 통과하면 망망대해 태평양이 펼쳐진다. 반대로 이곳을 통과해 들어서면 시드니 하버로 진입하게 된다. 이곳은 시드니의 관문이다. 시드니로 들어오는 적의 함대를 막기 위한 대포와 벙커가 곳곳에 배치되었음을 본다. 지금은 녹슬어 옛날의 흔적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등대 옆 잔디에 하얀 크로바 꽃이 만발해 있다. 여기에 덥석 주저 앉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태평양이 부채처럼 활짝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작은 돛단배가 떠다닌다. 하루 종일 다닐 수 있는 시니어 오팔카드를 처음 받고 수없이 하버 곳곳을 다녔던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단장한 승객용 배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맨리 (Manly)가 왼쪽 저 만치에는 노스 시드니 (North Sydney)의 높게 치솟은 빌딩이, 또 시티의 타워도 보인다.

난 크로바 꽃으로 뒤덮인 양탄자 위에 멍하니 앉아 반대편에 우거진 숲, 하늘과 바다, 떠 다니는 배들을 바라 보며 노트와 펜을 꺼내 폼을 잡아 본다. 젊은 연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아름답다. 그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 또한 젊어지는 듯 하다. 혼자 사색에 젖어 노트에 끌쩍거려 본다.

 

하버를 둘러싸고 구비 구비 아름다운 시드니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

손을 뻗으면 만져 질듯 뭉실뭉실 평온한 하얀 구름

상큼하게 스치는 시원한 바람

크로바꽃의 카펫트에 살포시 앉아

하얀 노트에 펜을 굴린다

누가 나에게 천국을 말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말하리라

내가 있는 이곳이 그곳이라고

 

다시금 왔던 길로 걸어와 써큘라키 행 배에 올랐다. 해가 여울여울 서쪽 하늘에 걸려 있다. 갈라지는듯 오렌지색 하늘을 찰칵찰칵, 손은 부지런히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써큘라키 가까이 들어서니 오페라하우스가 코앞에서 장엄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 소리의 울림을 듣노라니 새들이 둥지에 모여 지저귀는 소리가 떠오른 것은 웬일일까?

여름 해가 지고 어두움이 몰려들 무렵 거리를 걷다 보면 새들의 향연을 흔히 만날 수 있다. 하루 종일 새들이 돌아다니다 저녁이 되어 그들의 안식처 나뭇가지 사이로 모여들면 그 장엄한 새들의 대화소리는 귀를 멍하게 한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느라 누가 먼저랄까 양보 없이 떠들어댄다. 바라다 보이는 오페라하우스 가는 길 옆, 웅성거리는 소리가 마치 나뭇가지에 모여 지저귀는 새들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법 어두움이 몰려온다. 어느새 빌딩들은 불을 비추고 있다. 하버브리지도 불을 켰다. 건너편 노스 시드니에서도 불빛이 찬란하다. 눈앞에 펼쳐 있는 불빛을 보고 있는 사이 내가 선 곳에 서도 불빛으로 환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다시금 배를 갈아타고 메도뱅크 행 배에 올라 유유히 하버를 머리에 이고 지나 밤바다를 달리고 있다. 배 뒤로 멀어지는 시드니시티는 마치 하늘 위에 펼쳐져 있는 은하수 같다. 이렇게 오늘도 자유로운 영혼의 흔적을 남겨본다.

 

 

글 / 클라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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