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둘기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진짜?” 주방에 있던 아내도 깜짝 놀라 얼른 달려왔습니다. 우리집 뒷마당 파골라 지붕 위에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은 분명 하얀 몸체에 군데군데 옅은 갈색무늬를 지닌 ‘둘기’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뒷마당으로 달려나가 얼른 밥과 물을 챙겨줬습니다. 그럼에도 둘기는 쉽게 다가오지 못했고 둘짝이가 먼저 내려와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쭈뼛쭈뼛 다가왔는데 행동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고 계속 주변을 경계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찔한 사건(?)은 지지난 일요일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날따라 배가 또 고팠던지 두 번째로 우리집을 찾은 둘기와 둘짝이는 사이 좋게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중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뒷마당 텃밭과 화단에 물을 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후다닥 소리가 나더니 두 녀석이 급히 날아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평소 하도 못되게 굴어서 제가 ‘양아치’라고 부르는 노이지 마이너 (Noisy Miner) 몇 마리가 밥을 먹고 있던 둘기와 둘짝이를 공격한 겁니다. 거기까지는 가끔 있었던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였습니다.
저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녀석들 중 하나가 양아치들에 쫓겨 급히 도망가다가 새로 짓고 있는 옆집 크리스네 2층 창문에 부딪힌 겁니다. 소리가 너무 커서 ‘괜찮나?’ 싶었는데 10여분 후 둘짝이만 혼자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파골라 지붕에 앉아 한참을 뭐라 구구대고 있었습니다. 그날, 둘기는 다시 오지 않았고 둘짝이는 얼마간을 그렇게 혼자 있다가 날아갔습니다. 채 먹지 못했던 밥에는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너무 세게 부딪혀서 많이 다쳤나?’ 싶었지만 달리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어떻게 된 일인지 둘짝이 혼자서만 우리집을 찾았고 녀석은 주변을 한껏 경계하며 밥을 먹고 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여전히 둘짝이만 왔고 둘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날 창문에 너무 세게 부딪혀서 죽은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저 집 2층 발코니에 떨어져있을 텐데 구해줄 방법도 없고 죽었다면 묻어주기라도 하고 싶은데 공사 중인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사실, 이런 생각은 그날부터 시작됐지만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로 넘어가자 점점 기정사실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생각과 안쓰러움과 미안함에 3일째를 맞고 있었는데 지난주 수요일 낮, 거짓말처럼 둘기가 나타난 겁니다. ‘그깟 비둘기 한 마리 갖고 웬 요란이냐?’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찌질한 우리는 3일 동안 녀석 때문에 너무 많은 속을 태웠습니다. 아마도 둘기는 부딪힌 충격이 너무 커서 심하게 앓아 누웠다가 겨우 추스르고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두 녀석이 다시 나란히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아내와 저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다소 비실대던 둘기도 이내 씩씩해졌고 며칠 전부터는 두 녀석이 밥을 다 먹고는 다정하게 뽀뽀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도 노이지 마이너는 물론, 가끔은 블랙앤화이트까지 둘기와 둘짝이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어 우리는 녀석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계에나 동식물의 세계에나 그런 양아치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더 더럽고 더 악랄한 짓을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모함하고 괴롭혀서 고통 속에, 심할 경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면 참 많이 화가 납니다.
언제 어디서나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몰염치한 짓을 거침없이 해대는 하이에나 류의 인간들도 반드시 없어져야 할 양아치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쿠카부라나 까마귀 등 덩치 큰 새까지 집단으로 괴롭히는 노이지 마이너도 분명 그 세계의 양아치입니다. 정성 들여 가꾸고 관리하는 잔디 속에서 염치도 안 가리고 여기저기 쑥쑥 튀어나오는 아무개 풀 같은 양아치도 분명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들입니다. 정녕 우리에게 양아치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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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