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운동가방을 들고 헬스장 (GYM)으로 들어간다. 여기 저기서 “굿 모닝” 소리가 들린다. 기구에서 걷는 사람, 뛰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자전거 타는 반에서는 강사의 목소리가 힘차다. 오전에는 주로 시니어들이 할 수 있는 운동반이 많아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나도 그 대열에 서서 하루를 연다.

헬스장은 규모가 꽤 크다. 근력운동을 할 수 있는 많은 기구들이 있고, 스트레칭, 바디 발란스, 필라테스, 줌바, 요가 등의 반들이 요일 별로 있어서 각자가 선택해서 할 수 있다. 나이와 국적은 다르지만, 들숨과 날숨 속에서 함께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이 곳을, 십여 년 동안 즐겁게 다니고 있다.

나는 최근에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작년에 체중이 갑자기 줄어 들면서 팔과 다리에 근육손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가반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와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원하는 운동 기구에 사람들이 차 있다. 등받이 의자에 하얀 수건만 걸쳐 있고, 사람은 없는 기구를 발견했다. 두리번거리며 수건 주인이 오길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아 수건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의자에 앉았다.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서양 여자가 와서 자기가 맡은 자리라고 하면서 턱으로 수건을 가리켰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끝나면 바로 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금 황당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섰다. 나는 빈자리를 찾아 다니면서도 그녀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오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유럽 쪽의 여자 같다. 강도 높은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와, 팔 다리가 굵은 근육질의 여성이었다.

며칠 후에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날도 사람이 많았다. 한쪽 구석에 비어 있는 기구를 발견하고 기분 좋게 운동을 시작했는데, 또 그녀가 왔다. 옆에 가방을 두었으니 자기 차례라는 것이다. 가방은 보지도 못했지만 슬그머니 오기가 생겨서 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세트(?)로 연결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해야 된다고 했다. 내가 당연히 양보해야 된다는 표정이었다.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나?

운동하다가 일어나는 것도 자존심에 금이 갈 것 같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었다. 흥분하면 영어가 더 버벅대지만,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여기는 당신 개인의 헬스장이 아니다. 하지도 않으면서 자리를 맡아놓고 다른 사람이 못하게 하는 것이 규칙에 맞는지 매니저에게 물어보자” 고 했다. 그녀는 나를 흘깃 노려보더니 가방을 들고 가버렸다.

양보를 부탁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상대방의 배려를 기다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무례와 오만이었다. 그 후로 그녀와 가끔 마주쳐도 서로 모른 척한다. l don’t care. (상관없다) 수건이나 가방으로 자리를 맡아놓는 뻔뻔한 행동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헬스반에 등록해서 다니는 사람들은 시합을 해서 우열을 가린다 거나, 몸짱을 만들려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규칙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양인 서양인 차별 없이 서로 양보하면서 허물없이 지낸다.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양보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양보를 미덕이라고 하지 않는가? 길 위에서 자동차끼리 서로 비켜주며, 기차나 버스 안에서 자리를 내어주고,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남에게 먼저 주거나, 자기의 주장을 굽혀 남의 의견을 좇음을 양보라고 한다. 양보가 가능 하려면 상대방을 알고 나도 살피는 너그러움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양보가 있는 곳에 넉넉함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러나 양보를 임의로 강요하거나, 부당하게 상대방에게 밀려서 희생이 동반되는   양보는 미덕이 될 수 없다.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비굴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양보가 아니다. 오히려 정당하게 내 것을 지키고, 양보할 수 없는 이유를 전하는 당당한 태도가 디아스포라와 다문화 회에서 더 요구되는 것 같다.

나는 호주에서 이방인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이민자 콤플렉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비쳐질 타국인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규칙에 더 예민하고,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줄을 서는 곳에서나, 운전 중에 끼어 들어서 양보할 경우가 생기면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스스로 원해서 양보하면 여유와 따뜻함이 있다. 자발적인 양보, 이민자로서 슬기롭게 살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 / 이정순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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