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수가 후배 김지석을 자신의 제주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두 사람은 탁 트인 앞마당에 마주앉아 이른 아침부터 제주흑돼지 삼겹살 파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는 가스버너 위에 고기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한 개는 삼겹살을 굽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호박이며 버섯 등 채소를 굽기 위한 것입니다.
요산 수치가 좀 높게 나왔다는 김지석을 위해 그가 특별히(?) 준비한 채소 고기판인 겁니다. 맛있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는 후배를 향해 류승수는 “너는 요산 수치가 높으니까 고기보다는 이런 걸 많이 먹어야 해”라며 끊임없이 채소를 권합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끝내는 생 배추와 오이, 당근까지 가져다 놓고 김지석에게 먹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삼겹살을 한꺼번에 두 개씩 집어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맛있게 먹습니다. 김지석이 어쩌다 삼겹살에 젓가락을 가져가면 “너는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니까”라며 잔소리를 투하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김지석은 요산 수치가 살짝 높을 뿐이지만 류승수 본인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 통풍이 와버린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김지석의 “형은 통풍환자인데 고기를 그렇게 먹어도 돼?”라는 질문에 그는 씩 웃으며 “나는 약 먹잖아”라고 응수합니다. 요산 수치가 조금 높은 사람은 위험하니까 고기보다는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고 이미 통풍이 온 자신은 약을 먹고 있으니 고기를 맘껏 먹어도 된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고기로 배를 채운 류승수는 이번에는 라면을 두 개 끓여 폭풍흡입을 시작합니다. “형, 통풍이라며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고 라면까지 먹어도 되는 거야?”라는 김지석의 질문에 그는 “몇 번을 말하니? 약 먹잖아”라고 응수해 웃음을 자아냅니다. 3월 30일 방송된 한국 Jtbc 예능프로그램 ‘배우반상회’의 한 장면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과 음식조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먹지 말아야 할 혹은 자제해야 할 음식들을 무의식 중에, 때로는 두 눈 질끈 감고 맘껏 먹곤 합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괜찮아. 기분 좋게 먹으면 다 보약이고 기분 좋게 마시면 다 약주야”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걸 보면 저도 얼핏 류승수 닮은꼴(?)인 듯도 싶습니다.
제 나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한 두 가지씩의 약은 먹고 있는 게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개중에 어떤 사람들은 약의 종류가 꽤 많고 거기에 각종 건강식품들까지를 더해 그야말로 한 움큼씩을 입에 털어 넣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 감기약도 안 먹고 살던 저도 세월의 흐름에는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한국에서는 줄곧 ‘인조인간’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호주에 처음 와서 비자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받을 때부터 조짐이 살짝 있었던 듯싶습니다. 457취업비자 신청을 위한 신체검사 준비과정에서 “소변에서 당이 좀 높게 나오네요. 며칠 후 다시 한번 검사해봅시다”라는 GP의 이야기에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때는 용케 신체검사를 잘 통과했는데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회사인수 과정에서 생각 외로 많았던 무수한 스트레스가 저에게 끝내 당뇨 약을 안겨주고 말았던 겁니다. 처음에는 술도 딱 끊고 음식조절도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도 어느 정도는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음식도 술도 과하지 않게 나름 조절은 하고 있지만 가끔씩은 슬그머니 선을 넘을 때도 있습니다. 저한테도 그처럼 “약 먹잖아. 약 먹으니까 괜찮아”라는 오만함이 살짝 곁들여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이와 건강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는 상황… 류승수 씨를 보면서 “또 다른 약을 더 먹지 않도록 ‘약 먹잖아’의 자만심에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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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