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교포들께서는 대개 아시는 이 나라 이야기입니다. 전문지식이 아니므로 한담 (閑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뒷부분은 장래에 대한 필자의 짧지만 귀한 통찰력의 하나라고 자부해봅니다. 한때 저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미국 일변도적이어서 호주에 대하여는 아는 것, 관심 모두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이 나라와 관계를 갖고 반평생을 여기에서 살게 되었는가와 우리가 쉽게 들어온 토픽인 이 나라의 백호주의 (White Australia policy)와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그리고 사회주의 정책을 말해보려니 자전적 수필에서나 밝혀야 할 오해 받을 개인사를 조금 써야겠습니다. 1975년입니다. 신문사 시절 호주외무부의 해외중견언론인 초청 프로그램 덕으로 한 달간 외무부 직원인 피터 허트리 (Peter Hurtly, 2년 후 호주대사관 문정관으로 한국에 파견) 씨와 함께 호주 5대주의 가볼 만한 곳을 여기에 살면서 보다 더 많이 돌아 봤습니다.
그때 호주의 인상이 너무 좋았습니다. 시드니공항 입국장에는 김포와는 달리 깨끗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서호주의 수도 퍼스의 한 호텔에서 묵고 있을 때는 아래 숍에 필름을 사러 내려가 지갑을 놓고 왔다고 하니 나중에 갚아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주는 좌파 정권? 호주가 모국인 영국을 따라 내각책임제인 것 말고는 정치에 대하여는 아는 게 없었어요. 외무성이 짜준 일정에 따라 캔버라 한국대사관에도 들렸는데 그때 참사관이었던 박수길씨 (나중 유엔대사를 지냄)가 고 휘틀람 노동당정부가 실각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흥분해서 본국에 급히 타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흥분한 이유는 물론 그때 마침 제가 묶고 있던 캔버라의 레이크 호텔 (The Lake Hotel)에 북한대사관이 설치되었을 만큼 호주는 좌파적 정권이라고 인식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대로 호주는 북유럽국가들과 캐나다와 같이 자본주의에 복지중심 사회주의요소를 가미한 이른바 혼합경제 (mixed economy) 체제지만 굳건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좌파는 아닙니다. 여기 한인들은 호주가 1970년대 초 오랜 백호주의 정책을 철폐하고 아시아인에게 이민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흔히 말합니다. 과문인지 몰라도 저는 호주정부가 그런 정책을 공공연하게 천명한 적은 없고 전통적인 이민진원지인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은 끊겨 대신 인접지역인 아시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렵 월남전의 종료로 거기에 취업 차 가있던 일단의 한국인들이 관광비자로 입국한 후 그 뒤 두 번 실시된 사면령으로 눌러 앉게 되고 이후 가족과 친척 초청으로 들어온 이민 (Family reunion migration 또는 Chain migration)과 기술이민 (Skilled migration)으로 호주한인사회가 급성장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 이전 월남피난민과 그 후 중국인과 인도인 등 아시아계 이민의 계속된 증가로 ‘호주의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The changing face of Australia). 처음 우리가족이 호주에 왔을 때는 킹스크로스나 에핑 하이웨이에서 버스를 타면 백인승객들의 시선이 모아져 매우 불편했습니다. 지금은 이스트우드나 스트라스필드로 가는 전철을 타면 누구 말대로 광동성 (廣東省)으로 향하는 중국의 기차 안과 같습니다.
다문화주의 이대로 성공할까? 거의 270개의 다양한 해외국가와 지역의 인종이 섞여 살게 된 호주사회가 평화롭고 안정적일 수 있게 이 나라가 내건 정책이 다문화주의입니다. 덕택에 각 이민자커뮤니티는 각자 고유의 음식과 의복과 문화를 즐기고 살 수 있고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호주는 영어를 쓰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이들간의 언어장벽을 넘어 필요한 여론조성을 이뤄나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민자들의 애로를 정부나 주류사회에 반영시킬 수 없고 각자도생 (各自圖生)으로 참고 지내야 하니 결국 호주는 제3세계 국가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불과 엊그제 경험한 일입니다. 스트라스필드 전철역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자리가 거의 찼습니다. 좁은 곳에 두어 사람이 더 꾸역꾸역 들어오니까 안에 있던 피부가 완전 백인은 아니나 여기 오래 산 것 같은 두 사람이 짜증을 내며 나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입니다. 스트라스필드로 돌아오기 위하여 에핑 역에서 평소와 같은 홈에서 전광판을 보니 35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방송이 나오는데 어느 나라 출신의 발음인지 도대체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광판에 뜬 행선지는 스트라스필드 행인데 차는 곧 거꾸로 향했습니다.
최근 시드니 대부분 전철역에서 차가 30여분 연착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한번은 그런 상황에서 기다리느라 구름처럼 모여있는 승객들 가운데 한 백인에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그는 ‘Corruption! Corruption!’을 연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의 부패라는 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중간간부나 실무자들의 책임이 크지 않은가 의심해봅니다. 이 대중교통의 이용객은 대부분 이민자들인데 이런 애로를 모아 정부에 전달해보는 이들 커뮤니티의 단체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 / 김삼오 (글무늬문학사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