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가진 게 없어도 가진 게 많은 사람 같았다. 당신의 복장은 언제나 깔끔하고 정갈했다. 각지게 다린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입었다. 구두는 항상 반짝반짝 빛났다. 누구에게도 구차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남에게 주는 것도 없지만 남의 것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로 존재했고 아버지로 충분했다. 나에게는 언제는 이래서 좋고 언제는 저래서 싫은 화학적인 감정의 아버지는 아니다. 그 너머로 진화된 전기적인 사랑*의 아버지다.
내가 결혼하자, 아버지는 미군에게서 선물 받은 거라며 감자 깎는 칼을 하나 주셨다. 탑메이트 (topmate)라는 라벨이 아직도 붙어있는 볼펜 크기만 한 칼이다. 시어머니가 쓰던 거라며 물려받았던 한쪽 귀퉁이가 닳아서 칼처럼 날카로워진 숟가락을 물리치고,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준 빨간색 도구를 38년째 쓰고 있다. 이젠 아버지의 유산이 되어 감자를 깎을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덕분에 감자 깎는 일은 쉬워졌고, 즐거운 추억이 되었고, 그리움이 되었다.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운 비움의 사랑으로 다가오곤 한다.
겨우 감자 깎는 칼 하나로 그럴 수 있겠느냐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러게 말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더하기 빼기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하나 있다. 경제적으로 말하자면 쥐뿔도 없는 내가 개뿔만 있는 남편을 만나 가난의 늪 속에서 허덕거렸다. 빚을 대물림 하며 살아야 할까 봐 갖게 된 근심 걱정 불안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빚이 빚을 늘리는 지옥의 아수라장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다들 힘들어하던 때라서 누구에게도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누구와도 상의조차 못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수심 가득한 얼굴을 알아차렸을까? 아버지는 혼잣말이듯 말씀하셨다. “자갈 논 팔면 너희들에게 나눠 줄 거야.” 아버지가 자갈 논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후로 나는 희망이 생겼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했듯이, 물에 빠진 자 지푸라기 잡듯이 아버지의 말씀을 잡고 살았다. 언젠가는 내게도 하늘에서 내린 두레박을 탈 기회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생각했다. 참을 수 있었다. 잘 살아냈다. 아버지처럼 남 보기에 깔끔하고 정갈하게 살기, 남에게 줄 것은 없지만 남의 것을 가지려 하지 않기, 나로 존재하기, 나로 충분하기로, 지금 잘 살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이 없었더라면 난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희망은 삶의 유일한 에너지다. 산술적으로는 풀 수 없는 생명의 에너지를 주는 언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힘이다. 감자 깎는 칼을 주신 아버지의 이면에 숨은 ‘희망의 유산’은 곰곰 생각할 과제다. 가난이 더욱 가난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대에 모든 아버지가 모든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유산이었으면 좋겠다. 힘들다고 징징대지 말고, 가난하다고 주눅 들지 말고, 우주 가득한 에너지, 전기적 에너지를 받도록 아버지들이여, 긍정의 유산을 물려주시라.
*조 디스펜자 (Joe Dispenza)의 ‘당신도 초자연이 될 수 있다 (Becoming Supernatural)’ p.62 인용
글 / 류순자 (시인·수필가 글벗세움문학회·인터넷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