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셈해보면 1995년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2000년인가부터 명색이 칼럼이란 걸 쓰기 시작했으니 23여년을 글이랍시고 끄적거렸다.

컴퓨터 고장으로 날아가버린 100여편을 제외하고도 300여편의 칼럼이 남아있으니 단소리든 쓴소리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할말이 많기는 많았던 모양이다.

송구스럽게도 내가 쓴 글을 과대평가해주는 분들이 간직하고 있는 글들을 책으로 엮자고 넌지시 말들을 던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쓰는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 오래 남을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깊지도 넓지도 못하고 힘들고 아픈 사람들 이야기보다 나의 넋두리 같은 글들이 책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날 때, 그 글들이 글로서 갖춰야 할 격려와 꾸지람과 변화와 꿈과 희망에 떳떳할지 자신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간직하고 있는 글들을 정독해보는 것이 하루의 작은 일과가 됐다. 글들을 정독하면서 낯선 사람들의 만남인 뉴질랜드 한인사회의 단면을 되돌아봤다.

누구를 칭찬하고 비위를 맞추는 단소리를 썼을 때 나는 평안했다. 부패하고 음흉하고 위선적인 인간들을 비판하고 그렇게 살지 말라는 ‘쓴소리’를 썼을 때 그들은 나를 편파적이라면서 공격했다.

공격하는 그들은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리플리증후군 (Ripley Syndrome) 환자 같았다. 생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거짓말이 일상화 되어있는 소시오패스 (SocioPath) 환자 같았다. 그들은 공존의 사회질서를 무시했다.

부조리를 지적하고 사기성행동을 나무라면 그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명예훼손을 들먹이며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리하시라. 명예훼손으로 인정된다면 나는 몸으로 때우겠다고 했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뉴질랜드 감옥소 실상을 겪어보는 것도 환상적인 체험 이리라!

어느 날, 나의 쓴소리를 여과 없이 게재하던 교민지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나는 다른 교민지의 요청으로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다른 교민지는 나의 글에 대한 반응이 초라했다. 부패한 인간들의 무질서와 부조리를 지적하면 정정이나 삭제를 요청했다. 좋은 게 좋다면서 적당히 어울려 살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어를 문구를 수정했다. 나도 그 교민지처럼 초라했던 거다. 그렇게 지난 일을 반추하자 나는 무참했다.

얼마 전에 한인사회를 갈라치기 하는 오만과 착각에 빠져있는 쓰레기들에 대해 쓴소리를 썼다. 역시 그 교민지에서 정정을 요청했다.

아직도 철없는 늙은이의 쓸데없는 오기일지라도 좋다. 나는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수준의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그럴지라도 위선과 거짓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쓴소리 못하고 좋은 게 좋다는 글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그 교민지에 글쓰기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언제부터인지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달과, 질서 사회의 횃불이 되어야 할 언론 본연의 역할이 뉴질랜드 한인사회에서는 사라졌다. 뉴질랜드 한인사회에서 언론이라는 완장을 차고 행세하는 부류들은 진정 자신이 언론인인지, 언론인을 기망하는 허상인지 성찰하길 바란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쓴소리를 하지 않으니 쓰레기 같은 얼라들로부터 공격 당할 일이 없고 협박당할 일이 없어 차라리 평안했다.

그런데, 과연 가치와 의미를 담은 진정한 평안함은 어떤 것일까? 타인으로부터 욕 듣지 않고 공격 받지 않고 시비 걸리지 않는 평안함일까? 비록 쓰레기들로부터 으름장과 욕설과 협박을 받을지언정 쓴소리와 바른 지적을 했을 때 밀려오는 자신에 대한 당당함을 느끼는 평안함일까?

며칠 전에 다니는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를 다듬어주던 미용사가 거울로 나를 쳐다보면서 슬며시 말을 던졌다. “정의로운 분! 요즘 칼럼을 볼 수 없네요. 왜 글 안 쓰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수년을 그곳에 드나들었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를 아십니까?”

“그럼요, 선생님의 글에서는 사람냄새가 나요. 쓴소리를 읽으면 가슴도 후련해지구요.”

나는 당황하고 부끄럽고 미안했다. 어물어물 이젠 한인사회에는 쓴소리를 게재해줄 언론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시드니에서 발행되는 <코리아타운>에는 여전히 쓴소리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랬다. 그분은 나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음은 나의 자긍심이라는 깨우침을 줬다. 난 문득 침잠하는 잔잔한 평안함을 느꼈다.

“나는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더불어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 모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 하려 한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아빠의 꿈도 꾸세요!”
Next article채무지급불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