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찬란한 봄이 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공기에는 연두 빛 새싹들과 오색의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들로 가득하다.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사가 신비스런 향수를 듬뿍 뿌려놓은 것 같다.
봄의 향기들을 즐기다 보면 이 순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정말로 마법사가 나타나 이 찬란한 계절을 영원으로 바꿔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이런 아이 같은 바람을 하면서 웃어본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봄이 왔다는 것은 행복이고 부지런해진다는 의미이다.
동면하듯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햇살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기지개를 펴고 산책길에 나선다.
봄 산책은 바쁜 일상에 쫓기던 여유 없는 마음에 단비 같은 촉촉한 감성을 선물한다.
제 세상을 만난 듯 하얀 꽃 대궁위로 샛노랗게 얼굴을 내민 민들레 군락, 울타리를 감고 피어나는 나팔꽃 잎을 납작하게 흙에 붙인 채로 꽃대만 솟아오르는 질경이, 자운영 꽃을 닮아 보이긴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보랏빛 꽃들… 고향 땅에서 지천으로 흔하게 자라는 이런 식물들도 느린 산책길에서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봄은 꽃들의 향연이다. 겨울의 끝 무렵과 봄의 초입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자목련을 시작으로 아네모네, 벚꽃, 바틀브러쉬, 애버라스팅, 위스테리아, 프렌지페니 그리고 봄이 절정으로 무르익을 때 진 보라 빛으로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자카란다까지.
마치 바통 이어받기라도 하듯 제 때를 만나면 어김없이 자신들만의 특색을 뽐내며 피어난다.
모양새, 향기, 피어나는 시기가 제 각각이긴 하지만 한 계절을 머무르다 다른 계절로 이어지는 순간에 제 몫을 다한 꽃들은 또 어김없이 져서 사라지는 것은 공통된 진리이다.
화려함과 싱그러움을 잃고 꽃이 지는 자리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 풍경을 보여준다.
세상의 이치에 밝지 않아 시행착오와 어리석음이 삶을 지배하던 젊은 시절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의 색깔이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꽃이 피고 지는 일, 새싹이 나고 초록이 빛을 바랜 후에 낙엽이 되어 사라지는 일이 바쁜 젊은 시절엔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았고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할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년이란 시간에 이르고 나니 지나치기만 했던 자연의 변화들이 얼마나 경이롭고 오묘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단연코 많은 시련이 있었을 것이란 표현에도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비로소 봄에 이르렀을 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피어나는 생명들….
꽃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거스르는 법이 없다.
제 시절을 꼭 지키며 피어난다. 시절인연이라 했던가? 봄이라는 계절과 수많은 꽃들과의 인연인 것이다.
순수한 물리적인 의미의 인연. 한 계절이 오고 갈 때 그에 맞는 온도와 환경에 적절하게 시기를 맞춰 새 순을 발아하고 꽃을 피우는 고귀한 의식과도 같은 인연.
우리네 인생에도 이런 시절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지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번뇌와 욕구들이 서서히 빛 바랜 나뭇잎처럼 퇴색될 때 평범한 것에 감사하고, 자연이 주는 무수한 희열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서 꽃이 만개하듯이 원숙한 자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글 / 이주실 (글벗세움 회원·장애인 Educ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