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함께한 흔적, 새벽까지 나눈 열 두 명 가족의 담소들이…
“미안한데… 구정 때 너희 집에 간 김에 삼촌네 올 때까지 있다가 만나보고 올까?” 전화선 너머의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신다. 나는 대뜸 “그건 아니죠, 벌써 1년 넘게 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내내 아들 집에 계시는 걸로 보일 순 없죠. 염치없는 오빠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했다.
01_외삼촌 가족 6명이 6일간 시드니로 여행 온다고 한다
그리고 공손히 “1주 정도 계시면, 캔버라로 다시 모셔다 드릴게요. 관광 와서 90 노인을 뵈려면 하루 시간 내서 어른 뵈러 캔버라 가는 건 당연히 생각할 것입니다” 하고 다시 말씀 드렸다. 그런데 오후 늦게 동생이 전화를 해왔다. 항상 그래왔듯이 어머님 원대로 결정을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외삼촌 가족 6명이 6일간 시드니로 여행을 온다고 한다. 숙박, 차량, 일정 등 모든 계획을 세워 온다고 하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막내 동생의 첫 호주여행이다. 어떻게 하든 동생이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픈 마음이 있다는 점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사실, 작년에 한국 방문 중 삼촌들과의 만남에서 불편했던 일도 있었고, 여행 가족 중 4명과는 이민 이후 20년 가까이 접촉이 전혀 없었다. 오직, 삼촌부부 하고 명절안부 정도만 주고받는 관계였던 나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 방문소식은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고, 우리에게는 일절의 문의나 의견을 받은 적도 없었다. 자꾸만 물어보시는 어머님 걱정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급하고 걱정스러웠다.
몇 번의 연락시도 끝에, 겨우 필요한 정보들을 아쉽게 전달했지만, 이미 주차장이 없는 숙소를 시내 중심에 구해 놓은 바람에 체류기간 내내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02_70 넘은 막내 삼촌은 어머니 같은 누님 앞에서 재롱을…
점차 어머니도 평온해지셨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준비한 상차림을 정성을 다해서 뷔페식으로 차려냈다. 한국과 캔버라 그리고 시드니를 배경으로 모이게 된 서먹한 12명… 토요일에 저녁 한 끼를 가볍게 하기로 했지만, 풍족한 음식과 분위기가 무르익자 막내 삼촌은 8남매 장녀인 어머니 같은 누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70 넘은 삼촌의 노래는 반주도 없이 춤과 함께 무한 반복으로 순서도 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어머님과 막내 삼촌의 상기된 얼굴색은 20년 넘은 이 만남의 서먹함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삭막한 이민생활에서 이렇게 온 가족이 어울려 본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모임을 특히 어색해하고 불편해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공연한 걱정을 했구나 했다. 그냥 이렇게 물 흐르듯이 만나면 되는 것을….
거실 뒷마당에 이어진 공원주변의 적막함이 널찍한 거실의 환하고 아늑한 불빛 분위기로 조화롭게 어울렸다. 술이 적당히 오른 모두는 자정이 넘어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옛날 옛적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평소 초저녁에 잠이 많은 어머님과 아내 그리고 캔버라 동생 부부도 이야기 꽃의 만개함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했다. 긴급하게 만들어진 각자의 잠자리에서 막내 삼촌 부부는 어머님 방을 함께 배정받고 즐거워하셨다.
03_반쪽 망고를 티 스푼으로 잘라 내 입 가까이로 가져오신다
그러니까 2주전, 이 모임과 구정차례를 위해 캔버라 동생 집에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러 갔을 때였다. 어머니는 홀로 아들 오기를 아침부터 기다리시며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즐겁고 밝은 어머님의 안색에 아들의 점심 외식비용을 아껴주려는 마음이 읽혀지니 “90 노인네가 힘들게…” 또 다시 나는 궁시렁 궁시렁 어색하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맛있게 점심을 잘 먹고 “이제, 출발해야 해요” 했다.
그런데도 굳이 망고 절반을 잘라 내 앞에 놓고 “먹어…” 하시며 싱크대로 가신다. 싱크대 앞에서 구부정하게 선 자세로 두 손으로 망고 씨를 붙들고 빨아 드시는 어머니
항상 그래왔지만 슬그머니 올라오는 내 화를 참고 있는데, 가깝게 다가 오셔서 반쪽 망고를 티 스푼으로 잘라 입 가까이로 가져오신다. 나는 얼굴에 부글부글 끓어 올라오는 화를 온 힘을 다하여 감추고, 일부러 무덤덤한 표정으로 “안 먹어요” 했다.
“왜?” 하고 어머니는 물으신다. “배불러서요” 하니 “그래도, 이거 한번 먹어” 하신다. “싫어요” 하니 “그래도…” 하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언짢아하신다.
04_어머니가 쓰시던 보행기… 저걸 다시 쓰실 수 있을까?
이제 제발, 좀 그만 좀 했으면 좋으련만 항상 반복되는 상황이다. 한심하게도, 언제나 보릿고개에 멈추어있는 어머님의 변함없는 본능… 그 본능을 인정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고약한 아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표현이 딱 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어머니와 동생네는 캔버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성당에 가기 위해, 삼촌네는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아침 열 시가 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님과 함께한 2주간의 흔적과 새벽까지 나눈 정감 어린 열 두 명 가족의 담소들이, 모두가 빠져나가 휑하게 비어있는 방방마다, 잔해처럼 남아있다.
텅 빈 어머니 방을 열면, 막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아들과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마음이 물씬 풍긴다. 오늘 현관 앞에 어머니가 쓰시던 보행기가 묵묵히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는 저것을 다시 쓰실 수 있을까? 마음이 착잡해진다.
정귀수 (글벗세움 회원·버스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