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별

나리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그 애 두 눈에선 물 줄기가…

내 품속에서 나리는 평화스럽게 잠들어 있었다. 자다가도 몇 번이고 슬픈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이제는 아픔이 없는 곳으로 보내야 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13년 전, 지인이 두 살짜리 폭스테리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01_얼굴 반쪽은 밤색, 한쪽은 하얀색… 작고 찢어진 눈의 못생긴 개

얼굴 반쪽은 밤색, 한쪽은 하얀색에 눈은 동양사람 눈처럼 작고 찢어진 못생긴 개다. 지인은 불쌍한 개니 꼭 키워달라고 사정했다.

나는 오래 전 애지중지 키우던 개가 내 품에서 죽는걸 보고 다시는 개를 안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리의 딱한 사정을 듣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리 주인은 오랫동안 투석을 하고 있는 중환자였다. 키우던 개 두 마리를 길에 버렸었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어디로 떠났고 나리만 주인을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찾아온 나리를 다시 버릴 수가 없어 우리와 인연이 된 것이다.

더러운 몸에 벼룩이 득실거렸다.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나에게 아들이 선뜻 자기가 키우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아들은 나리한테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아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밤에는 자기 용돈과 나라한테 들어가는 돈 때문에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감자칩을 파는 가게에서 기름통 닦는 일을 했다.

 

02_또 다시 버림받을까 봐 곁눈질 하며 가족들 눈치를…

일하러 가면서도 자전거 뒤에 나리를 데리고 다녔다. 나리는 일하고 있는 아들 옆에서 기다리다 일이 많아 늦게 끝나는 날이면 집에 가자고 짖었다고 한다.

주급 받는 날이면 나리 밥 하고 비타민, 장난감을 잔뜩 사왔다. 막내가 학교 가고 없으면 의자 위에서 창문을 내다보며 아들을 기다렸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 나리는 옛날 상처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은 또 다시 버림받을까 봐서인지 곁눈질을 하며 가족들 눈치를 많이 봤다. 짐승도 눈치를 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해서 사랑을 받았다.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나리의 재롱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리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가고 있을 때 큰아들이 3개월 된 러시안브르 고양이를 사왔다.

어린 고양이도 어미와 떨어져 외로울 텐데 나리는 첫날부터 자기자식처럼 품에 안고 잤다.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안 좋다는데 이상하리만큼 살가웠다.

 

03_개선장군처럼 당당히 고양이를 앞세우고 뛰어오는 나리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아들은 온 동네를 찾아 헤맸지만 어린 고양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비싼 고양이라 누가 데려갔나 봐.” 모두 걱정을 하는데 나리는 자기 방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리가 얄미웠다. 엉덩이를 몇 대 때려주었다. “애가가 없어졌는데 잠이 오냐?”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귀를 내리고 슬그머니 방을 나가 버렸다. 그 다음날 아침밥을 주러 갔더니 나리도 보이지 않았다.

온 동네를 또 나리를 부르며 찾아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물이 한없이 떨어졌다. 개와 고양이 사진을 붙인 광고지를 만들어 현상금 500불을 걸고 골목마다 붙이고 다녔다.

일주일이 지난 아침이었다. 나는 그날도 광고지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고양이를 앞세우고 뛰어오는 나리를 보았다.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분명 그리운 우리 애들이었다. 나리는 나를 보자 두발을 높이 들어 내 등을 쳤다. 좋아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04_내가 죽은 고양이를 만지자 나리는 으르렁거렸다

“나리야 미안하다” 나는 오직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리의 활약에 우리 집은 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까지도 궁금한 건 고양이 목에 줄이 다른 줄과 바꿔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와준 것이 기적과도 같아서 너무도 감사했다. 그 뒤에도 고양이는 자주 집을 나갔다. 그럴 때마다 나리는 고양이를 찾아 앞세우고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의 연락을 받고 집에 도착하니 고양이가 입에 피를 흘린 채 집안에서 죽어있었다. 벌써 몸은 싸늘하게 식었다. 길에서 차 사고로 죽은 고양이를 나리가 집으로 물고왔다고 했다.

나리는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내가 죽은 고양이를 만지자 으르렁거렸다. 손도 못 대게 했다. 나리는 입으로 물어 자꾸 죽은 고양이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건에 싸서 안고 나가자 내 바지를 물고 흔들었다. 나리는 내 슬픈 가슴을 더 아프게 때렸다.

 

05_고양이는 나리 젖을 빨았고 신기하게도 젖이 조금씩 나왔다

집 앞마당에는 조그마한 꽃 무덤이 만들어졌다. 나리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나리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같은 고양이를 또 사왔다. 나리는 똑같이 생긴 고양이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놀래 했다. 나리는 슬픔도 잊은 채 또 다시 엄마 노릇을 잘했다.

가끔 고양이가 이불에 오줌이라도 싸서 혼내주면 나리는 나를 나무랐다. 내 등을 두발로 세게 쳤다. 이제 젖 떨어진 고양이는 나리 젖을 빨았다. 신기하게도 젖이 조금씩 나왔다. 믿어지지 않았다.

고양이가 개 젖을 먹다니… 가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식구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으면 “나리야, 애기 젖 좀 줘라” 한다.

그러면 나리는 벌렁 누워 젖가슴을 내어주었다. 나리로 인해 우리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 행복을 주던 나리는 이제 15살이 되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리 오래 머물지를 못했다.

 

06_서로 얼굴을 핥아주는 그 눈빛들이 너무 슬펐고…

나리 목욕을 시키다 가슴에 몇 개의 혹이 만져졌다.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보니 암이라 했다. 수없이 잘게 퍼져 있어 수술을 해도 더 고통스럽고 완치될 수 없고 나이가 많으니 그냥 보내주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라도 더 빨리 보내고 싶지 않았다. 배에서 혹이 터져 피가 범벅이 되는 날이 자주 생겼다.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렇게 버텨주길 기대하였지만 수없이 터져 나오는 썩은 피 때문에 이제는 더 아프게 할 수 없었다. 깨끗하게 씻기고 새 붕대로 온몸을 감았다. “나리야 애기하고 인사해라.” 고양이를 데려다 주었다.

둘이서 따뜻한 양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부엌 창문을 통해 그 애들의 이별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로 얼굴을 핥아주는 그 눈빛들이 너무 슬펐다. 보내야 하고 떠나야 하는 슬픈 이별 그 애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인 나리는 힘없는 걸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나리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애 눈에서 두 줄기 물 줄기가 흐르는걸 보았다. “나리야 정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요리연구가)

Previous article긍정의 심리학
Next article코리아타운 특별기획 : 뜨거운 자외선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겨울철에도 놓칠 수 없는 자외선 차단 – SUN SM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