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건 잘 못해도 보는 건 아주 잘 봅니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제가 다닌 학교들이 고교는 물론, 대학도 1년에 최소 세네 번은 꼭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던 ‘축구명문’이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축구장을 자주 찾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선수로 뛸 실력이나 자신은 없지만 경기를 보며 작전을 짜고 훈수(?)를 두는 건 여느 국가대표팀 감독 못지 않습니다.
야구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명승부가 자주 펼쳐지던 고교야구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1970년대 ‘역전의 명수’로 일컬어지던 군산상고 그리고 서울의 선린상고가 저의 최애 (最愛) 야구팀이었습니다. 이 같은 저의 고교야구 사랑은 대학야구로까지 그대로 이어져 역시 야구에 관한 한 어지간한 전문가 뺨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제가 야구를 딱! 끊은 건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이었습니다. 12.12군사쿠데타와 5.18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5공정부가 Screen, Sports, Sex의 3S 정책으로 국민들을 현혹 또는 우민화 시키는데 야구를 이용했다는 분노에서였습니다.
2002년 6월 FIFA 한일월드컵 축구 열풍이 뜨겁던 시절… 맨땅에 헤딩 식 시드니 이민을 온지 9개월 남짓 되던 그때 우리는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457취업비자가 그야말로 ‘목숨 줄’이었는데 부실한 회사가 스폰서쉽 거부를 당한 상태에서 우리의 비자는 MRT로 넘어가 있었음에도 못된 회사대표는 나 몰라라 하고 나자빠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캠시의 비미쉬 스트릿 (Beamish Street)을 막고 설치한 대형스크린 앞에서 우리는 한국 경기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목청을 돋웠습니다. 그리고 저의 못 말리는 축구 사랑은 2015년 시드니에서 제16회 AFC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릴 때 또 한번 작렬했습니다. 호주와의 결승전… 바로 눈 앞에서 차두리의 ‘미친 질주’와 손흥민의 ‘말벅지’에 감탄하며 우리는 열광, 열광 또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2주 남짓 동안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안게임 덕분에 얼떨결에 스포츠에 빠져 지냈습니다. 한국 선수들 경기가 있는 날은 함께 흥분하며 아낌 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나 관심이 없었는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살다 보니 저도 어쩔 수 없이 애국심 혹은 ‘국뽕’ 같은 게 생겨난 모양입니다. 특히 기대 이상의 열정과 선전이 계속된 수영에서 예상외의(?) 메달이 쏟아지면서 한국 선수들이 그렇게 예쁘고 잘 생겨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과 북한이 맞붙은 경기에서는 당연히 한국이 이기기를 바라면서도 서로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쳐주기를 응원하곤 했습니다. 이 같은 기대는 여자축구 8강전에서 한국과 북한 전 주심을 맡은 태국인 주심의 어처구니 없는 판정으로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해버렸지만 더 큰 아픔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5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안게임에서는 남한과 북한이 ‘코리아’라는 이름의 단일선수단을 구성해 ‘한반도 기’를 들고 함께 입장했습니다. 실제로 두 나라는 여자농구, 남녀카누, 남녀조정 등 3개 종목에서는 단일팀을 만들어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함께 일궈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소, 닭 보듯이 하고 있어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아는 체를 하며 다가가 인사를 건네도 북한 선수들은 애써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하긴… 급랭한 남북관계로 인해 북한 선수들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또 한 차례의 스포츠 광풍(?)이 지나갔고 일상이 회복됐습니다. 한 가지 궁금했던 건…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가며 다양한 경기들을 즐길 수 있어 좋았는데 KBS, MBC, SBS 지상파 3사 외에 TV조선이 종편채널로는 유일하게 중계방송에 합류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혹여나 최근에 일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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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