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부자로 만들려면 프로 스포츠선수로 키우라고 한다. 성공한 프로 스포츠선수는 부의 상징으로 돼있다. 나는 자식을 스포츠선수로 키우지는 못했지만 스포츠를 좋아한다. 지금도 중계되는 한국프로야구를 즐기고 매주 월 수 금은 숨차게 테니스도 한다.
고국에서 살 때는 새벽 테니스를 즐기곤 했다. 지점장시절에는 동료들의 권유로 골프를 배워 필드에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골프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겨우 한두 달에 한번 정도 필드에 나갔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아들의 담임선생을 만났다. 담임선생은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워보자고 했다. 아들의 체격조건이나 차분한 성격이 골프선수로 적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을 골프선수로 육성시킬 수 있는 경제적 능력에 자신이 없었다. 담임선생의 의견을 일축했다. 지금까지도 아들에게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뉴질랜드에 와보니 사방이 테니스코트장, 골프장이었다. 코트장이나 필드사용료도 깜짝 놀랄 만큼 저렴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신분상승과 자기과시의 귀족 스포츠라는 골프가 뉴질랜드에서는 일반대중 스포츠였다. 애완견을 데리고 혼자 골프를 즐기는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필드사용료가 저렴한 덕분이었는지 나를 포함한 한국인 이민자들 대다수가 거의 매일 필드에서 마주쳤다. 할 일 없는 이민자들의 값싸고 시간 보내기 좋은 황금놀이터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응어리진 신분상승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필드사용료가 저렴해서였을까? 세계적으로 알려진 골프선수, 한국계 뉴질랜드인 본명이 고보경인 리디아 고 (Lyeia Ko)는 소녀시절부터 프로 골프선수를 목표로 아버지와 함께 온종일 필드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리디아를 프로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해 열성을 다했다. 리디아는 본인의 노력과 아버지의 헌신으로 유명한 프로 골프선수로 성장해 이제는 갑부가 됐다.
골프 하면 으레 생각나는 프로골퍼가 있다.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 박세리다. 박세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벽까지 훈련장에서 연습하는 연습벌레였다고 한다. 그녀의 성공은 엄격한 훈련과 투혼의 산물이다.
박세리를 프로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한 그녀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훈련 방식은 유명했었다. 100개가 넘는 아파트계단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뛰어 오르내리게 했다는 소문은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물론 그런 훈련방식 때문만은 아니고 박세리 선수 본인의 의지와 피눈물 나는 끊임없는 노력이 따랐겠지만 그 아버지의 열정을 폄하할 수는 없을 거다.
박세리는 1998년 LPGA투어에 참가해 2개의 메이저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LPGA 통산 25승을 포함하여 여러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어마어마했다. LPGA 투어에서의 우승뿐만 아니라 다수의 광고계약과 후원으로 그녀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어느 스포츠나 성공한 선수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프로골퍼로 성공한 리디아 고나 박세리를 보면 그녀들을 성공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열정과 희생은 눈물겹고 숭고한 거다.
근자에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의 아버지에 대한 한국뉴스를 접하고 입맛이 개운치 않았다. 박세리 선수가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버지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박세리 선수는 들어나는 아버지의 채무를 정리했지만, 정리하면 나오고 해도 해도 끝없이 나오는 아버지의 채무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박세리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이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삶이어야 하고 나의 삶은 나의 삶이어야 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 아버지는 자식의 성공에 숟가락을 얹은 아버지였던가 보다.
문득, 대한민국의 자랑인 세계적인 축구선수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이 생각난다. 그는 아들을 오늘날의 손흥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현재 EPL에서 활동하는 손흥민 선수의 연봉이 177억원이다. 웬만한 기업의 수익이다. 그가 혼신을 다해 지도한 아들은 거부가 됐다. 이제 아들에게 용돈도 달라고 하고 느긋하게 유유자적해도 좋으련만 그는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다. 축구 꿈나무 육성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그랬다.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다. 자식 돈은 자식 돈이고, 내 돈은 내 돈이다. 자식 통장에 왜 관심을 갖는가. 어디 자식 돈에 숟가락을 얹나.”
비유할 것도 떠벌릴 것도 못 되는 삶이지만, 나는 매월 노후연금이 나오면 일정부분을 떼서 함께 사는 아들에게 준다. 많이 가진 사람들에겐 푼돈이겠지만 나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다. 나 나름대로 계산한 최소한의 내 생활비다. 그냥 숟가락 얹기가 불편해서다. 아들은 처음에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며 받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그랬다. “너는 그렇겠지만, 나는 내가 편하고 싶어서다.”
세상이 돈 돈이다. 어쩔 수 없는 변화다. 부인할 수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지길 바란다. 돈 때문에 부모 자식이 얼굴 붉히고 목소리 높이고 심지어 연 (緣)을 끊는 경우도 있다.
자식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꾸중해야 될 거다. 이유는 하나다. 나의 모든 것을 다해 자식을 이만큼 키웠으니 숟가락 얹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 한심하고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이다. 그래, 아버지들아, 제발 자식 돈에 숟가락 얹지 말자!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