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사람들

오늘도 ‘교수님’은 열강 중입니다. 본인이 직접 폼을 선보이며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올바른 수영을 가르치느라 몹시 바쁩니다.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중국인들은 물론, 국적과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르침이 필요하다 싶으면 누구든 붙들고 열강을 펼칩니다.

물론, 무료강습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누가 원하지도 않았을 텐데도 본인이 좋아서, 본인이 우러나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폼을 교정해주고는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제자(?)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열정도 빼놓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는 자신이 수영을 하는 시간보다 남을 가르치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일타강사’는 못 되는 듯싶습니다. 정작 본인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자세가 훌륭하지는 않은 겁니다. 속된 말로 이론은 빠삭한데 본인도 그렇게는 못 하는, 실전에는 약한 스타일입니다. 그럼에도 자세가 잘못된 사람들을 바로 잡아주려는 그의 열정만큼은 높이 살만합니다.

저쪽에서 ‘댕댕이 할머니’가 들어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물에서 걷는 모습이나 이야기하는 소리가 마치 귀여운(?) 강아지 같아서 그런 별명을 붙여봤습니다. 그 할머니는 50분 정도를 물속에서 열심히 걷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곁들이는데 워낙 오래 돼서인지 어지간한 사람들하고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진정한 ‘인싸’입니다.

2번 레인이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중국인 여성이 수영을 하는데 팔을 어찌나 빨리 돌리는지 자유형을 할 때는 ‘탱크’처럼, 배영을 할 때는 ‘풍차’처럼 팔을 빠르고 힘차게 돌립니다. 그녀는 거의 쉬지도 않고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수영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정말이지 체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다만, 희한한 것은 팔을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에 비해 정작 수영속도는 빠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처음 수영장 걷기를 시작한 날, 그에게서 두 번이나 얻어맞았습니다. 6번 레인에서 걷고 있는데 5번 레인에서 수영을 하던 ‘칠래’가 팔을 희한하게 휘젓는 바람에 옆 사람들을 사정없이 갈기고(?) 있었고 저도 그 희생양이 됐던 겁니다. 덩치가 제법 큰 남자라 타격이 작지 않았습니다. 저에 이어 그로부터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한 중국인 여성은 어이가 없는지 그를 쳐다보며 한동안 깔깔댔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그는 변함없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수영을 즐기고 있고 알아서 피하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 됐습니다.

3번 레인에서 파워 넘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내가 접영을 시작한 겁니다. 제가 팔불출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내는 소리 없이 참 예쁘게 수영을 잘 합니다. 다만, 접영은 수영의 성격상 힘이 넘치고 물 튀김도 많을 수밖에 없어 자연스레 돌아보게 됩니다. 여기저기에서 아내의 접영 모습에 넋을(?) 놓고 있다가 엄지손가락들을 치켜세웁니다.

저만 보면 찡긋,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중국인 부부는 우리와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부인은 열심히 수영을 하고 남편은 물속을 부지런히 걷습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대충 저와 연배가 비슷할 것 같아서 그리고 유독 저한테 친근감을 진하게(?) 표현해서 ‘내 친구’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지난 4월, 갑자기 허리에 이상이 오는 바람에 재활운동 성격으로 3개월 남짓 동안 수영장 걷기를 하면서 수영장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습니다. 일곱 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이후로 맥주병이 된 저는 매일 한 시간 이상씩을 수영장 걷기만을 했습니다. 물론, 물리치료도 하고 GP선생님의 도움으로 치료약도 먹고 한 덕분도 있었겠지만 물속 걷기가 초기 허리디스크 치료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수영장 걷기를 졸업(?)하고 GYM에서의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에 다시 매진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수영장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가끔씩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수영장에도 들어가야겠습니다. ‘수영장에서 걷는 게 무슨 운동이 되겠어?’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물속에서 걷고 뛰는 게 근력강화에도, 다이어트에도 생각보다 많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좋은 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살짝(?)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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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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