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름날씨처럼 습기 머금은 더위, 한국의 그것과 닮아 있는 산…
케언즈 공항에 도착하니 마치 한국 여름날씨처럼 습기를 머금은 더위가 두 팔로 끈적하게 들어온다. 생각과 다르게 아담한 공항 모습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만났던 대도시의 모습과 사뭇 달랐고 소박했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렌터카를 찾고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산들의 모습은 한국의 산과 닮아 있어 나도 모르게 눈에 익숙한 모습을 보면서 살포시 미소가 드리워졌다.
01_자연 그대로의 속살들… 길가로 보이는 사탕수수 밭, 야자수들은
완만한 산등성이들 안에 푸른 나무들이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포트 더글라스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는데 마치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속살을 볼 수 있었고 길가로 보이는 사탕수수 밭이며 야자수 나무들은 시드니와 또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길가에서 파는 망고와 바나나 사인을 보고 멈췄다.
한 원주민 부부가 팔고 있었는데 바구니에 담아진 양이 많아 보여서 반만 살 수 없느냐고 했더니 차 뒤편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박스 안에서 수북이 쌓여진 망고를 비닐에 담아주는데 반은커녕 바구니에 담아졌던 양만큼이나 담아 주면서 반값만 받는단다.
어떤 망고는 아이들 얼굴만큼이나 커 보였다. 원래 호주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의 정을 케언즈에 도착하자마자 듬뿍 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 첫날 케언즈에 도착하자마자 산 이 망고는 일주일 여행 동안 우리에게 신선한 망고 향을 매일 맛보게 해주었다. 달콤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도로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도로다. 포트 더클라스를 열대우림이 대 산호초와 만나는 유일한 곳 (where the rainforest meet the reef)이라 일컫는데 이 길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열대우림이 오른쪽으로 돌리면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02_전망대에서 본 바다의 모습… 숨이 멎을 것 같다는 표현이
그 사이에 난 길을 운전하는 것은 경험하기 드문 축복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바다가 바로 옆에 있었다. 도로 갓길에 주차를 하고 모래사장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돌탑들이 쌓아져 있다. 어떤 소망을 기원하며 올렸을까, 그들의 소망은 다 이루어졌을까….
지극히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숨이 멎을 것 같다는 표현이 있다. 전망대에서 본 바다의 모습이 그랬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빛을 띄고 있는 망망대해와 보드랍게 드리워진 아름다운 해안선을 넋을 잃고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바라다 보았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말로 하는 느낌의 표현은 불필요하다.
신이 큰 맘 먹고 손을 대어놓은 걸작품임에 분명했다. 해안선을 따라 도로는 바다와 숲 속을 들고 나고를 번갈아 하며 뚫려 있었다. 포트 더글라스에 도착하니 여행지답게 다양한 숙박시설로 즐비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Dain Tree National Park로 향했다. Cape Tribulation 지역에 있는 이 국립공원은 하루 일정을 보내고 오는데 적절했다. 250 미터 너비의 강을 건너야 볼 수 있다고 했다.
포트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다리같이 생긴 배가 차들을 실어 나르며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 강 양쪽의 공간을 연결해주고 있었다. 자주 목격할 수 없는 신기한 교통수단이었다.
03_같은 코스로 여행하는 젊은 커플과 몇 군데 들릴 때마다 마주쳐
강 폭이 좀 더 넓어 강 위에 오래있고 싶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미리 구한 공원지도에 꼭 들러야 할 곳들을 표시해서 아날로그 시대처럼 지도를 펼쳐 보면서 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열대우림지역을 따라 운전해가는 것은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우리와 같은 코스로 여행하는 젊은 커플이 있었다. 몇 군데 들릴 때마다 마주쳐서 마치 같이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인사도 나누고 미지의 땅 같은 낯선 곳에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할 수 있는 여행의 묘미를 맛보았다.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는 곳까지 가는 것을 우리가 돌아오는 지점으로 세웠다. 생각보다 그곳은 금방 나타난 듯싶었다. 가는 길 도중에 간단하게 산책할 수 있는 열대우림 산책길이 있었고 수많은 바닷가를 들렀다.
대부분의 바닷가 입구에는 스팅 레이 (Stingray: 가오리침) 경고문이 있었다. 그림으로도 그 위험이 쉽게 이해될 수 있게 했다. 호주 동물애호가였던 Steve Irwin도 스팅레이에 찔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걸 보면 응급조치를 바로 할 수 있게 식초통들이 해변 입구마다 놓여 있는 것이 이해가 갔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안전하게 깃발이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우리도 깃발 사이에서 바다 수영을 즐겼다. 원숭이보다 더 날렵하게 생긴 바다 안전요원이 나무에 직접 올라가 따온 코코넛을 따서 맛보라고 주는데 그 맛은 바닷가 수영에 최고의 음료가 되었다. 꿀맛보다 달콤한 자연의 맛이 느껴졌다.
04_PPT 보며 듣는 강의는 바다환경 생각하는 인식 전환의 기회가
많은 사람들이 추천 한 과실 아이스크림 가게는 어렸을 적부터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꼭 들러야만 할 곳이었다. 단지 과수원을 돌아보는 데만 해도 30분이 넘게 걸리는 이 커다란 곳에 자리한 이 가게는 과수원에서 나는 갖가지 생과실류로 직접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고르는 데 한참 걸렸지만 역시 나의 미각을 실망 시키지 않았다. 달콤한 맛은 기분도 좋아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Dain Tree National Park에서 하루를 꽉 채우고 다음날 산호를 볼 수 있는 바닷가 (Coral Sea)로 나갔다.
이 바닷가는 Great Barrier Reef가 띠처럼 포트 더글라스 지역을 따라 형성 되어있다. 이 지역만 넘어서면 그 어떤 바다생물도 살 수 없는 심해저가 계속되는데 이것은 마치 우주의 블랙홀을 연상한다고 한다.
포트 더글라스에서 멀리 떨어진 청정지역의 바다에 마치 우주선 같은 베이스를 만들어놓고 하루 일정을 보낼 수 있게 손님들을 유혹하는 하루 패키지 여행은 많은 전 세계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05_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닷속 산호들의 광경은 황홀 그 자체
식사와 간식 뷔페를 선상에서 했고 또 바다에 도착하기 까지 환경 전문가로부터 강의도 들었다. PPT를 보면서 듣는 강의는 바다환경을 생각하는 나의 인식 전환의 기회가 되었다. 많이 깨우쳐졌고 바다생물들의 소중함과 사랑이 깊어짐을 느꼈다.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는 알바트로스 새를 보고 가슴이 아파 변호사 생활을 그만 두고 환경사진가의 길을 걷는 크리스 조던이 떠올랐다. 슬픔을 느끼며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그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 이 환경전문가를 닮았다.
베이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잠수함을 탔다.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살고 자라고 있는 산호를 보기 위해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바닷속 산호들의 광경은 황홀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인간에게도 유익한 산호초들이 지구의 온난화로인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해양과학자인 마이클 크로스비 (Michael Crosby)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앞으로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된다고 예견하고 있다. 사람들은 산소가 육지에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80% 이상의 산소가 바다로부터 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산호초가 만들어내는 건강한 해양은 우리 인간이 계속 숨을 쉬면서 살아 갈수 있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바다 생물인 것이다.
06_고요하면서도 몽롱한, 마치 꿈속 거닐고 있는 느낌…
고요하면서도 몽롱한, 마치 꿈속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이한 바다생물들이 헤아릴 수도 많았다. 수 백 년은 된 듯한 거대한 바다거북이들이 마치 날아다니는 것처럼 물속을 헤엄치고 다녔고 무지개 색이 눈 안으로 스며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다녔다.
무지개 색깔들이 바닷속 여기저기에서 숨바꼭질하듯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잠수함 속에서 가이드가 물 속의 모습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창 밖 바닷속 풍경들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즐기고 있지만 실제로 바닷속은 전쟁터라 그는 비유했다. 산호뿐 아니라 모든 바다생물들이 서로가 잡아 먹고 먹히는 약육강생의 치열한 삶의 공간이 바닷속에서도 매일 일어나고 있단다.
여행 때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웠던 이 땅의 모습이 떠 올랐다. 거리를 두고 보면 모든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실제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살아남기 위한 삶의 투쟁인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들과 닮아 있는가….
전쟁터 같았던 젊은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록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가 될 수 없고 날아다니는 새가 될 수는 없지만 나의 생각의 날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다녔다. 흥미로운 공생의 관계들도 바닷속에 존재했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니 따뜻하게 다가왔던 세상을 떠올리며 이 아름다운 삶을 소중하게 엮어가려 한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School 수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