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바보?!

“아쉽지요. 정말이지 너무너무 아쉬워요. 이제 또 언제 만날지도 모르고 그때까지는 녀석들을 안아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하잖아요….” 금쪽같은 손주 둘이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엄마아빠와 함께 출국장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신 그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쳐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페이스톡을 통해 손주들과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긴 했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만남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때문에 외국에 사는 손자손녀가 한국에 와서 2주남짓 머물다가 돌아가는 것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못내 아쉽기만 한 겁니다.

한국 EBS 1TV가 매주 일요일 아침에 방송하는 ‘왔다! 내 손주’에 등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똑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모처럼 품에 안긴 손주들을 위해 맛있는 것, 좋은 것 다 해주고도 외국으로 돌아갈 날짜가 되면 헤어지기 싫어서, 보내기 싫어서 눈물을 삼키는 겁니다.

마더스데이 (Mother’s Day) 전날, 우리 집에서는 전격적인(?) 슬립오버 (Sleep over) 이벤트가 이뤄졌습니다. 훈이와 봄이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한 겁니다. 지 엄마와는 절대 안 떨어지려 하던 엄마껌딱지 봄이가 얼마 전부터 느슨해지기(?)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두 녀석은 우리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둥켜 안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습니다. 지 엄마아빠가 나가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우리는 녀석들과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먹고 재잘재잘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평소에는 아홉 시쯤 되면 잠자리에 드는 녀석들이 그날은 밤 열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녀석들은 우리 집 거실에 자리를 깔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같이 자는 걸 좋아합니다.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두 녀석 모두 자리에 누운 지 몇 분도 안 됐는데 금세 쌔근쌔근 잠이 들었습니다. 눈, 코, 입 어디 하나를 놓고 봐도 안 예쁜 데가 없는 녀석들… 특히 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못 생겼다고 은근히 구박(?)을 했는데 이 녀석이 갈수록 예뻐지고 있어 사랑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들어 전보다 엄청 더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새나오는 웃음과 즐거움, 고마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날도 제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혹은 제 무릎에 올라앉아 온갖 귀여움을 다 떨다가 곤히 잠든 녀석이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빠알간 볼에 뽀뽀를 쪽! 해줬습니다.

‘훈이는 할머니를 닮았고 봄이는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이라고 악을(?) 쓰던 제가 요즘은 굳이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제가 봄이한테 홀딱 빠지긴 한 것 같습니다. 봄이가 저를 닮은 구석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얼마 전, 봄이가 지 엄마한테 “나, 할아버지 차 우리학교 앞 지나가는 거 봤어”라고 했답니다. “할아버지 차 맞아. CIH…”라며 우리 차 번호판을 정확히 대더라는 겁니다. 희한하게도 남의 차 번호, 모발폰 번호를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쓸 데 없는(?) 걸 빼 닮은 겁니다.

이른 아침시간, 잠에서 깬 훈이가 제 목에 팔을 한번 쓱 감더니 예의 그 살인미소를 날립니다. 쌍꺼풀도 없는 사내녀석의 눈이 어쩌면 그렇게 크고, 깊고, 예쁠 수가 있는지… 아침부터 저는 꼼짝없이 녀석의 포로가 돼버렸습니다. 오빠 옆에서 곤히 잠들었던 봄이도 저를 보더니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아침인사를 합니다.

녀석들이 지 할머니한테도 마더스데이 선물을 했습니다. 에밀리는 할머니를 위해 예쁜 립 그로스와 손톱 다듬는 도구를 준비했고 에이든은 할머니 감성에 딱 맞는 귀여운 향초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1박2일을 알차게 지낸 딸아이 부부가 돌아왔고 우리는 마더스데이 가족외식을 가졌습니다. 그곳에서도 벌어진 할머니 바로 옆자리 쟁탈전은 봄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1박 2일을 꽉 차게 지냈음에도 녀석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요? 아마도 그렇다면, 그건 녀석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며 안겨주는 사랑의 종류와 색깔이 다양할 때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맘껏 즐기려는 우리의 욕심 때문일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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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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