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어느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죄수들에게 세상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으냐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엄마’와 ‘어머니’라는 답이 가장 많았답니다.

왜 누구는 엄마라고 했고 누구는 어머니라고 했을까요. 그래서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한 죄수가 답했답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컸을 때 부릅니다.”

즉, 엄마라고 부를 땐 자신이 철이 덜 들었을 때였고 철이 들어서는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첫 면회 때 어머니가 오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여안고 “엄마!” 하고 불렀답니다. 엄마와 어머니의 정의를 명확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떨까요? 아버지는 그냥 손님입니다. 힘없는 아버지에 대한 슬픈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유학 간 아들이 어머니와는 매일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는데 아버지와는 늘 무심하게 지냈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나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유학까지 왔는데 아버지께 제대로 감사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늘 손님처럼 여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후회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 줄게!” 하더랍니다. 밤낮 교환수 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응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요, 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 하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주는 사람에 불과했던 겁니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 너무 불효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너, 술 마셨니?” 하더랍니다. ㅡ 옮겨온 글

내가 태어나 자라고 나이 먹어온 세상은 유교문화가 뿌리내린 세상이다. 유교문화는 굉장히 수직적이다. 유교문화에서 ‘어르신’은 존중하고 공경해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무조건 순종하고 공경해야 했다.

그것은 윤리적인 딜레마였지만 순종이라는 미덕 앞에 침묵하고 고개 숙이는 것을 효도 (孝道)라고 했다. 하지만 그 윤리는 언젠가부터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이라는 너울을 쓰고 저수지의 구멍 난 둑처럼 조금씩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순종은 섭섭함과 원망의 기억으로 남아 언젠가는 폭발하는 휴화산의 마그마처럼 들끓기도 한다. 부족한 능력 때문에 잘 먹이지도, 잘 입히지도, 뒤를 받쳐 주지도 못한 못난 아버지는 때론 “아부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한 가족중심의 한국문화도, 고통도 즐거움도 함께한다는 가족이라는 개념도 개인주의로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나는 대체 뭐가 어떻게 변했다는 건지,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건지 분명하게 알 수가 없다.

개인주의란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남을 배려하며, 자기자신을 중요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며, 오로지 자기 자신만 챙기는 것은 이기주의라고 한다. 나는 세상이 황금만능주의로 변한 건지, 개인주의로 변한 건지, 이기주의로 변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유교문화에 젖어온 ‘아부지’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설고 불편하고 두려운, 자칭 신세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용어다. 신세대들은 장유유서, 부부유별, 부자유친을 들먹이는 아부지들을 구세대, 황혼의 블루스, 꼰대, 대화가 안 되는 먹통이라고 비하한다. 모두가 평등한 인격체인 세상에서 뭔 날 저문 소리냐며 비아냥거린다.

유튜브라는 곳에는 구세대 꼰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노후가 편해지는 조건’ ‘노후에 후회하는 5가지’ ‘노후 절대 해서는 안될 3대 바보짓’ 등등 다양하다. 모든 강연의 결론은 ‘자식에게 재산 남겨주지 마라’ ‘자식에게 기대지 마라’ ‘나이 들면 혼자 살라’로 매듭짓는다.

즉, 어차피 당신은 손님일 뿐이니까 더 확실하게 손님처럼 살라는 거다. 당신 인생은 당신 것이라는 얘기다. 가진 아버지는 혼란스럽고, 못 가진 아버지는 서글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흘러가는 세월을 방관하고 싶은 아버지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식이 힘들면 모두 내 탓이요! 라며 가슴을 치고, 자식의 뒤편에 서서 묵묵히 자식의 곁을 지키며, 자식의 행복을 바라면서 찬란한 청춘을 바쳐 무조건적인 헌신을 다한, 손님 같은 아버지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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