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누군가가 천국과 지옥은 젓가락의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천국에서 사용되는 젓가락은 길이가 길어 스스로 집어 먹을 수가 없어, 서로 상대에게 먹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옥의 젓가락은 너무 짧아 자기만 먹는다. 자기만 먹으려고 두 눈을 부라리다 보니 싸움이 그치질 않는다.
대한민국은 두 달이 지나도록 굶주린 하이에나들의 으르렁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만 먹겠다는 패거리들의 억지와 몽니로 나라가 쑥대밭이다. 손바닥만한 나라가 함성으로 뒤덮여 제대로 잠을 잘 수도, 눈을 뜰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국민의 삶은 간 곳 없고, 그저 자기 패거리들의 권력 쟁취에만 사활을 걸고 있다. 날이 새고 날이 지는 귀중한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공포의 하루가 돼버렸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외침도 아니다. 돼지들이 몰살당한 것에 대한 분노도 아니다. 쏟아지는 물줄기와 거칠게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보금자리가 떠내려가고 가재도구를 잃어버리고, 통곡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국민에 대한 지원을 재촉하는 함성도 아니다.
바다에서 쏘아 올려지는 미사일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다. 오직 우리 패거리가 싫어하는 저 인간을 총살시키라는 인민재판의 외침이다. 불태워 죽이라는 마녀사냥의 함성이다. 아니다, 한 인간만이 아니라 그가 아끼고 위하는 그의 가족 모두를 죽이라는 광기다. 술 취한 망나니의 어지러운 칼춤이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라는 한 패거리가 한 나라의 법무부장관이라는 자연인과 그 가족을 화형 시키고 싶어 광분한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갔다. 심약하고 병든 아내를 조리돌리고, 양처럼 순진하고 희망과 꿈에 부푼, 젊디 젊은 아들 딸을 모략하고 헐뜯어 시들게 한다.
그들의 광분은 광태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쟁취에 대한 야욕을 바닥에 숨기고, 정의와 적법을 빙자해 불의와 불법을 감추는 추악하고 잔악한 하이에나의 무리들이다.
하이에나는 밤낮없이 먹이를 찾아 배회한다. 갈기가 거친 만큼 성격도 거칠다. 하이에나는 자신보다 강한 사자 호랑이 표범 같은 최상위포식자에겐 덤벼들지 못한다. 최상위포식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그들이 남긴 찌꺼기를 먹고 산다. 먹다 남긴 먹이를 먹으며, 특히 썩어 냄새 나는 고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하이에나는 남은 먹이가 없을 때는 양, 염소 같은 무력하고 나약한 어린 동물들 공격한다. 먹이사슬에서 가장 염치없고, 뻔뻔하고, 지저분하고, 역겨운 포식자다.
하이에나에 다름아닌 무리들이 밤낮없이 힘없고 순수한 어린 양들을 공격한다. 먹잇감을 찾아 침을 질질 흘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들의 주위를 끈질기게 맴돌면서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는다. 더럽고 구역질 나는 무리들이다.
연좌제를 아시는가 모르겠다. 연좌제는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 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를 말한다. “협의의 연좌제는 친족 관계로 연루되어 형사책임을 지는 제도를 의미한다. 광의로는 친족 이외의 자의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기타 불이익 한 처우를 받는 경우까지 포함된다. 이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헌법 제13조 제3항에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 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 인간의 불법이 드러나지 않자, 그의 가족들까지 파헤치는, 이미 썩어 문드러진 연좌제까지 끄집어내고 있다.
그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 받았을 때, 나는 감히 <코리아타운> 9월 20일자 칼럼에서 말했다. 권력의 카르텔을 깨부숴야 한다고, 자칭 언론이라고 개폼잡는 기레기들과, 잔악한 하이에나와 흡사한 특정정치집단과 담합해 영원한 권력을 꿈꾸는 악의 무리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그것은 70여년을 굳건하게 버텨온 기득권세력의 카르텔이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걸 전제로 한 소망이었다.
법무부장관인 그는 만신창이가 됐다. 법을 깔아뭉개고, 연좌제를 부활시키는 특정정당과 기득권세력에 의해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은 갈갈이 찢어졌다. 그런 거다. ‘이순신’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자신과 가족을 묻은 거다. 대한민국의 젓가락은 터무니없이 짧다. 나는 그런 세상이 무섭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