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현상

히포크라테스도 ‘방귀는 건강에 필요하다’며 우리를 거들고 나선다

수개월을 북에서 숨어 지내던 손예진 (윤세리 역)이 현빈 (리정혁 역)과 함께 드디어 남북 군사분계선에 도착해 헤어지려 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우리 부부는 그들의 다음 행동을 숨죽이고 보고 있었다. 애잔함과 풋사랑이 두 연인들 눈 단지에서 꿀이 흐르듯 뚝뚝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빈이 손예진의 허리를 낚아채고 뜨거운 입맞춤을 하려 한다. 휴전선의 고요한 정적이 우리 방에도 흐르고 있는 바로 그 순간 터져 나온 내 방귀가 찰나의 긴장감을 주책없이 깨버린다.

 

01_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방귀 소리에 익숙했다

어느 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아내 옆에서 스스럼없이 방귀를 뀌기 시작한 것이. 신세대 부부처럼 서로 방귀를 트기로 약정을 한 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나의 생리현상은 아주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 있었다.

사실 부부가 매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서로에게 새로운 일이 생길지라도 인식을 할 여력이 없다. 아내도 내 옆에서 자연스레 방귀를 뀌기 시작한 것 또한 얼마간 시간이 지나 반추해보았지만 그 시작점이 아직도 모호하다.

갓 20대를 지난 그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타고난 건치와 팽팽한 피부 그리고 상대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시력이 영원할 줄 알았다.

아뿔싸… 그게 아니었다. 50대가 지나자 목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노안으로 돋보기 안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고 잇몸 치료한다고 치과도 자주 다니게 되었다.

얼굴 주름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구입하기 시작한 온갖 화장품이 화장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와 함께 부지불식간에 아내의 방귀도 시작된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방귀 소리에 익숙했다. 그 당시에는 배가 어느 정도 나와야 품위가 난다고 생각했고 방귀도 이왕 몸 밖으로 배출할 바에는 에둘러 할 필요 없이 아예 가장 큰 소리가 나게 해야 위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02_누나의 방귀 소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처럼

함성이 큰 방귀에 냄새까지 없으면 금상첨화였다. 격이 높은 그 방귀 당사자의 권위는 집안의 울타리를 벗어나 동네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으니 배도 적당히 나오고 더불어 보란 듯이 양질의 방귀까지 만들어내니 거들먹거릴 만도 했다.

우리 아버지였다. 그의 방귀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만들어졌으며 냄새는 전혀 없었고 소리 또한 동네에서 으뜸이었다. 바로 윗집에 사는 내 동갑친구 (이 녀석 여동생이 영화 ‘서편제’의 주연배우였던 오정해이다)가 매일 나에게 아버지 방귀 소리 숫자를 나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방귀를 뀔 때 큰 소리를 내면서 창문 너머 동네 길 쪽으로 침을 길게 내뱉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 점도 당시에는 허용되던 행동 문화였으리라.

사내아이들이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누구의 오줌 발이 더 멀리 나가는지 경쟁할 때 무릎을 약간 굽히면서 엉덩이를 힘껏 앞으로 당기는 것처럼 아버지의 목은 탱탱한 줄 위에서 화살이 튕겨져 나가듯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침은 그렇게 날아가곤 했다. 우렁찬 방귀 소리와 함께. 크로스오버 듀엣인 셈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자신의 부를 짐짓 방귀와 침으로 과시하면서 수컷의 당당함으로 출근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는 10대의 몇 년간을 누나네 식구들과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여자도 중년이 지나면서 방귀를 자주 뀐다는 것을 그때 이미 터득하게 된 것 같다.

누나의 방귀는 그 빈도수와 강도 면에서 아버지의 방귀와 맞수였으니까.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에 민감했을 10대인 나도 누나의 너무나 태연자약한 태도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내 누나의 습관성 방귀 소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처럼 귀에 익게 되었다.

 

03_서로의 방귀소리에 익숙해졌고 소리와 냄새로 건강 챙기기도

오래된 1976년 논문1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평균 하루에 14번 방귀를 뀐다는데 1996년 논문2에는 그 숫자가 23번으로 나온다. 서양인에 비해 그래도 채식 비율이 높은 한국인은 아마 이 숫자가 훨씬 낮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배에 가스가 차는 것은 보통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들숨을 통해 공기가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장에서 일어나는 발효 때문이다. 음식을 빨리 먹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공기가 자연스레 들어오게 되지만 껌을 씹는 것과 흡연도 요인이 될 수 있다.

유제품에 들어있는 당이 분해가 되지 않을 때는 십중팔구 방귀가 많이 나오게 된다. 육식보다 채식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은 방귀의 빈도와 냄새에서 어느 정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음도 사실이다.

함께 한 세월 속에서 자연스런 생리현상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우리 부부도 이제는 서로의 방귀소리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그 소리와 냄새로 서로의 건강을 챙기기 일쑤다.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도 우리를 거들고 나선다. ‘방귀는 건강에 필요하다 (Passing gas is necessary to well-being)’고 하면서…. 질병 치료에 있어 인체 내부의 자연치유력에 대해 관심을 쏟은 이 의학자의 방귀 냄새가 사뭇 궁금해진다.

 

박석천 교수의 '따로 또 같이' 여행기 ⑥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찰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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