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동안, 옆집도 우리 집도 새들의 천국(?)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가까이로 몰려든 새들에게 모이를 나눠주며 뭐라 뭐라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옆집 호주인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아내 또한 새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우리는 아예 뒷마당에 큼지막한 모이통을 만들어놔 초록, 빨강, 분홍, 파랑… 각양각색의 앵무새들과 덩치 큰 하얀 앵무새 (코카투) 그리고 웃음소리(?)가 귀여운 쿠카부라 등이 하루 종일 드나들며 모이를 먹고 재잘대곤 했습니다.
개중 용기(?)있는 녀석들은 우리의 손바닥에 올려진 모이를 쪼아먹기도 했고 어떤 녀석들은 우리가 한 손으로 과자를 높이 들고 있으면 받아 들고는 자카란다 나무 위로 올라가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우리의 이런 새와의 동거(?)는 소문을 들은 새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뒷마당을 온통 새똥천지로 만들어놓는 바람에 규모가 축소됐다가 옆집 호주인 할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양쪽 집 모두 시들해졌습니다. 그 동안 식량걱정 없이 풍요로운 시절을 누리던 녀석들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겁니다.
사실, 예쁘기로 따지면 앵무새가 최고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가까이에서 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집에서는 그런 앵무새들이 본의 아니게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계에도 엄연한 서열이 있어, 알록달록한 앵무새들이 덩치는 작아도 가장 파워가 세고 그 다음이 하얀 앵무새입니다. 온순한 성격의 쿠카부라는 모이 쟁탈전(?) 같은 덴 아예 끼어들지 않습니다. 녀석들이 그렇게 기 싸움을 하는 걸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집에서는 이것저것 다 필요 없이 비둘기가 서열 1위입니다. 둘기, 둘짝이에게 모이를 내주면 앵무새들이 두 녀석을 밀어내고 먼저 입을 대려 하는데 우리는 그 놈들을 슬그머니 쫓아(?)냅니다. 물론, 둘기, 둘짝이가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 놈들 순서가 되기는 하지만….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 아무리 좋은 슈퍼카라도 평범한 내 자식, 애정을 갖고 타는 내 차보다 못한 것처럼 둘기와 둘짝이도 이미 우리한테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 둘부터 챙기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둘기, 둘짝이는 우리가 모르고 있으면 지네들이 왔음을 알립니다. 일부러 거실 창문 가까이로 날기도 하고 주방 가까운 곳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안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가끔은 아내가 손바닥에 모이를 올려놓으면 그걸 쪼아먹기도 합니다. 야생 비둘기로서는 흔한 모습이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두 녀석은 맛있게 밥을 먹고 나서는 아주 정열적으로(?) 뽀뽀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맛있는 식사 후 둘이 부둥켜안고(?) 열심히 뽀뽀를 하길래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얼른 카메라에 담는데 갑자기 둘짝이 녀석이 둘기 위로 올라가 짝짓기 자세를 취했습니다.
“아니, 저놈들이?” 하면서 웃는데 둘기가 얼른 둘짝이를 밀쳐냈습니다. 재미 있는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두 녀석이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는 서로 등을 돌린 채 냉랭한 분위기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벌건 대낮에 들이댔다가 퇴짜를 맞은 둘짝이도 적잖이 멋쩍었을 것이고 엄마아빠(?) 앞에서 갑자기 민망스런 일을 당한 둘기도 많이 황당했을 터입니다.
두 녀석은 그렇게 몇 분 동안을 외면한 채 서 있다가 다시 화해라도 한 듯 나란히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높이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둘기 녀석이 혼자 와서 모이를 먹더니 어느새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뽀뽀도 하고… 그러고 보니 둘기도 이젠 많이 성장한 모양입니다. “쟤네들 새끼 데리고 오면 참 예쁠 것 같다. 그치?” 그날, 찌질한 우리는 하늘 높이 우리 집 주변을 기분 좋게 날고 있는 녀석들로부터 또 다른 손자손녀를 기다리듯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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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