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Time to say goodbye (이탈리아어 Con te Partiro)라는 노래가 있다. ‘떠나야 할 시간, 안녕이라 말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이탈리아 테너이며 팝페라 가수인 시각장애인 안드레아 보첼리 (Andrea Bocelli)와 영국출신 뮤지컬 배우이며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 (Sarah Brightman)의 듀엣 곡이다. 1995년에 발매돼 짧은 시간에 전세계를 휩쓴 유명한 서정적인 곡이다.

노래 제목만 보면 흔히 사랑하는 사람들 이별이야기로 애달픔을 노래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노래는 사랑을 따라 행복을 지켜주는 별이 빛나는 세상을 향해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노래다.

빛이 없는 어둠의 세상인 것들에게 안녕이라 말하고, 새로움을 찾아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자는 거다. 어떤 사람은 Time to say goodbye를 ‘그대와 함께 떠나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떠남은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희망이다.

내가 산 설고 물 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 이곳으로 무슨 운명처럼,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가족을 데리고 떠나와서 삶의 한 방편으로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할 때, 수시로 방송에 실어 보낸 내가 너무나 좋아한 노래이기도 하다.

나는 이 노래를 방송으로 내보내며 눈을 감고 앉아 내가 살아왔던 지난 것들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상의 것들에 스며들어 지금까지의 나를 깨고 나와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다.

내가 낯선 이 나라에 와 살면서 교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때는 말이야”였다. 지금은 이렇게 별볼일 없지만 고국에서는 힘깨나 썼다는 푸념 같은 것이었다.

적지 않은 이민자들은 자신의 삶을 채색했다. 지나온 부끄러운 삶을 감추려 했다. 적지 않은 이민자들은 거짓과 허세의 삶에 갇혀 벗어나질 못했다.

겉으론 가족의 행복과, 여유로운 생활시스템과, 깨끗한 자연환경을 찾아 새로운 세상을 찾아왔다고 자신을 위장하고 위로했지만, 정작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함에 대한 불안과 혼돈이었다. 또한 변화를 그리며 찾아온 세상에서도 이루지 못한 물질적 충족에 대한 자신과의 대립, 충돌 같은 것이기도 했다.

희망에 부풀어 찾아온 것이 때묻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어쩌면 물질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는 무의식적인 고해성사 같은 것이기도 했다. 변화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영혼이 아닌 육체의 변화는 진실로 변함이 아니었다.

나도 사는 것이 힘들 때면 떠나왔음을 후회하고 갈등하곤 했다. 옛 것의 나를 벗어나 새 세상에 적응하자고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마음은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변화하는데 더디고 서툴렀다. 새로워지는 것, 변화한다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2021년 미국 퓨 리서치센터 (Pew Research)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이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고 한다. 한데 유일하게 한국은 ‘물질적 충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가족이 평온해야 물질적 충족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충족이 있어야 가족이 평온하다는 논리다.

2025년 2월 대한민국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를 보면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4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8개국중 33위로 하위권에 속한다는 거다. 삶의 만족도는 국민들이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나타내는 주관적 지표다.

삶의 만족도는 소득수준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는데, 가구소득이 증가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인생에서 경제적 문제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서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들이 존재하고 있음도 기억하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호주 시드니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항구도시다. 시드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형형색색의 안전모를 쓰고 멋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무리 지어 여유롭게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과, 러닝화에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주변을 천천히 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오클랜드와 흡사하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삶의 여유와 행복이 흘러 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 진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그런 시드니 거주자들의 81%가 ‘내 삶에 만족한다’고 답했다는 거다.

시드니 거주자들이 그렇듯 삶에 만족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충족과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온화한 날씨, 깨끗한 자연환경, 가깝고 아름다운 해변, 다문화, 뛰어난 공공의료시스템과 교육시스템, 거기에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삶의 프레임은 행복할 수 있는 것들, 소중한 것들이 반드시 물질적 충족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물질적 충족을 삶의 최대 목표로 삼는다. 세상에는 물질적 충족보다 더 중요한 가치 있는 삶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배워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내가 어디에 있든 새로운 나를 꿈꾸는 것이다. 삶의 평화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인생이다. 더 높고 더 푸른 하늘을 날고 싶으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거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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