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이제 5일만 더 있으면 꼭 1년입니다. 지난해 12월 3일 쌩뚱맞은 비상계엄을 선포해 전 국민을 아니,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그 자(者)와 그 일당들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슨 절차가 그렇게 많고 무슨 과정이 그만치 필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빼박’ 죄 지은 자들에게는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합당한 벌을 주고 얼른얼른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는데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하고 비겁하고 찌질할까?’ 자신의 잘못은 전혀 모르는(?) 채 모든 책임을, 모든 죄를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발뺌하기에 바쁜 그를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일주일 전 법정에서는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과의 설전이 계속됐는데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을 펼치는 그에게 홍 전 차장이 “피고인.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시는 건 아니죠?”라고 일갈 (一喝)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비루한 웃음과 궤변을 늘어놓던 그와의 어처구니 없는 설전을 마친 후 홍 전 차장은 재판정을 향해 인사를 한 후 그에게도 허리를 숙이며 “건강하십시오”라며 나지막한 인사를 했습니다. 비록 ‘피고인’이라는 호칭을 쓰긴 했지만 한때 윗사람으로 모셨던 자에 대한 예우였던 겁니다.

그냥 쿨하게(?) “모든 것은 나의 불찰이었고 나의 잘못이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고 아랫사람들은 나의 지시를 따른 죄밖에 없으니 그들에게는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어달라”고 하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솔직히 법정에서 몇 십 년 아니, 무기징역 혹은 사형을 선고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어지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풀려나고 사면복권까지 받을 텐데 왜 저렇게까지 비겁하고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 달에 4000불씩 해서 1년 안에 다 갚겠다.’ 처음 약속은 이랬지만 그 자(者)의 태도는 금세 달라졌습니다. 한 달에 1000불씩 정리하겠다더니 나중에는 일주일에 70불씩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에게서 받아야 할 미지급 렌트비 5만 2000불에서 4000불을 깎아줬던 건데 일주일에 70불이면 686주, 거의 14년이 걸리는 기간이었습니다. ‘시작은 그렇게 해도 사정이 나아지면 더 빨리 갚겠지…’라며 순진한(?) 생각을 가져봤지만 그에게서 받은 돈은 70불씩 딱 두 번, 140불이 전부였습니다.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고 속된말로 저를 ‘갖고 논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1년 넘게 사무실이 비어있었던 것까지 따지면 최소 10만불은 손해를 본 건데 그는 처음부터 ‘떼먹을 결심’을 했던 겁니다. 이내 파산신청 (Liquidation)을 한 그는 지금 버젓이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호되게 당한 저는 결국 노후대책으로 마련했던 웨스트 라이드 사무실을 팔아버렸습니다. 그에게 떼인 돈은 그에게 준 조위금으로 치부하며 지내고 있지만 괘씸하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 넷플릭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 8부작을 앉은 자리에서 모두 봤습니다. ‘단짝친구인 두 여성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하고 완벽한 범죄를 꿈꾸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도 사필귀정 (事必歸正)의 결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나쁜 짓, 못된 짓 한 자들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게 현실이지만 모든 일이 사필귀정,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자를 향해 ‘너도 내 돈 떼먹은 것의 100배만 손해 봐라’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고 ‘김 부장, 내가 살아 있는 한 자네 돈은 꼭 갚겠네’라던 30년 전 제 보스의 그 약속도 아직 그가 생존해 있기에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바보스런 생각도 가져봅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2005년말쯤의 일이었습니다. 평온한 금요일 오후,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막 인쇄가 끝나 배포가 시작된 코리아타운이 ‘그 전주 것과 내용이 똑 같다’는 제보였습니다. 목요일 저녁, 전 직원이 다 함께 파일을 확인하고 오케이 싸인을 냈지만 디자인실장이 인쇄소에 잘못된 파일, 그 전주 파일을 보냈던 겁니다. 급하게 재인쇄에 들어가 토요일 아침에 올바로 된 코리아타운을 다시 배포했지만 억울한 돈 7920불은 오롯이 제 몫이 됐습니다. 회사를 인수한지 얼마 안된 어려운 상황에 당시로서는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지만 실수에 대한 최종책임은 사장인 저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의 그 비루한 피고인을 보면서, 일주일에 70불 궤변의 그자를 비롯한 크고 작은 제 돈 떼먹은 자들을 떠올리면서 사필귀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Previous article코스모스
Next article온라인 코리아타운 1322호 (2025년 11월 27일)